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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05. 2023

악몽의 9년

사람의 본질이 만들어낸 마산 최 씨 살해사건

9년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것이 옳은 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약 3,000여 일의 시간은 지나고 보면 짧지만 길게 보면 참 느리게 가는 시간이다. 한 씨는 자신의 기억이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넘어서 괴로운 기억이 자신을 점점 옥죄고 있었다. 관계를 끓어버린 아버지의 관계는 몇 년 전 변사지만 자연사처럼 처리가 되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어떠한 의혹 같은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나 애처로움 같은 것은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것도 오래되었다. 


피로 이어진 관계라고 해서 그것이 천륜이나 끊을 수 없는 관계는 아니었다. 부모가 부모답고 자식이 자식 다울 때 형제자매가 서로의 역할을 잘 해낼 때 인연의 관계는 계속 지속이 된다. 사람답지 못한 가족도 얼마든지 많다. 그렇게 한국의 가족관계는 점점 옅어져가고 있다. 


마산은 예로부터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며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바다사람들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통술을 먹으면서 하루의 고단함을 잊으려는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이기도 하다. 시끌벅적한 마산에 사업차 내려온 최 씨는 화려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48세라는 나이에 손에 쥐어진 돈도 적지가 않다. 대충 일하면서 직장에서 잘리다시피 쫓겨나고 큰아버지가 하는 건설용 모래판매를 하는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기 시작했다. 가진 것도 없지만 술집 여자와 즐기는 것이 좋았었다. 


큰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살던 어느 날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나이가 자신보다 많은 건설업에서 일하는 한 씨라는 남자였다. 어떻게 하다 보면 어울리게 되었고 콘크리트에 들어가는 혼화제를 생산하면서 그럴듯한 사업체도 운영하고 있었다. 필자 역시 토목을 공부하면서 다양한 혼화제에 대해 접해본 적이 있었다. 콘크리트 혼화재료란 콘크리트에 어떤 기능을 얻기 위해서 첨가하거나 필요에 따라 그 성분으로 첨가하는 재료인데 유동성이라던가 응결, 경화시간을 조절하고 방수효과, 중량을 조절하는 등에 혼화재는 자주 사용이 되었다. 


나름 잔뼈가 굵은 남자였다. 그 한 씨에게 건설과 관련된 일도 조금씩 접하면서 그 세계에 발을 더 깊게 내딛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콘크리트 파일을 생산하는 공장이 하나 나왔다는 것을 한 씨는 알게 된다. 막 건설붐이 일어나고 있을 때 지반을 단단하게 만들어주기 위한 콘크리트 파일을 생산하는 것은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길이기도 했다. 돈이 없었던 한 씨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최 씨에게 권한다. 자신이 모든 것을 도와주겠으니 최 씨에게 공장을 인수할 것을 권한다. 조건은 수익의 1/2을 받는 조건이었다. 최 씨는 당시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업은 크게 번창하였다. 


돈은 사람을 망가트리는데 가장 좋은 수단이기도 하고 윤택하게 해주기도 한다. 얼마 안 된 기간 동안 27억이라는 돈을 2004년에 벌게 되었다. 이미 최 씨의 인간성은 그렇게 좋지 못한 사람이었다. 최 씨는 등재이사로 되어 있던 한 씨에게 월급을 쥐어주기만 하고 수익분배는 생각에도 없었다. 여자를 좋아했던 최 씨는 마산 등지에서 비싼 룸살롱을 다니면서 여자들에게 돈을 뿌리고 다녔다. 게다가 강원랜드를 드나들면서 VIP대접을 받으면서 10억 원이 넘는 돈을 탕진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씨는 약속했던 돈을 요구했지만 최 씨는 면박만을 주고 결국 회사에서 쫓아낸다. 


한 씨는 그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는 시간이 갈수록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 씨는 결심을 했다. 살인청부업자를 찾아다니다가 중간책을 만났지만 요구했던 3,000 ~5,000만 원을 구할 수는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흉기를 준비하고 간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덩치도 큰 최 씨를 죽일 수 있다는 자신이 없었다. 이에 자신의 아들을 찾아가서 자신의 한과 억울함을 이야기하면서 도와줄 것을 요청한다. 22살이었던 아들 한 씨는 그냥 잊어버릴 것을 권했지만 워낙 그 의지를 꺾을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2004년 6월 아버지와 아들은 마산으로 내려간다. 평택에서 아버지는 도끼를 아들은 회칼을 준비한다. 전날 도착해서 최 씨의 숙소의 바로 아래층에서 기다리는 5시간 동안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세상에 최 씨는 없어져야 될 사람이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도끼를 들고 올라가서 실랑이를 벌이지만 이내 최 씨에게 제압당해 무릎까지 꿇리게 된다. 그 상황에서 맞고 있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아들 한 씨는 정신없이 최 씨를 찌른다. 최 씨는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그 현장을 벗어지만 그곳에 남겨진 것은 칼을 휘두르다가 피를 흘린 아들 한 씨의 DNA 뿐이었다. 


최 씨의 사망 이후에 강력팀은 그 주변을 조사했지만 증거를 찾아 못하고 미제로 남게 된다. 아버지 한 씨와 아들은 각각 평택과 아산으로 올라왔지만 아들은 아버지의 그런 행동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자신조차 용서할 수도 없었다. 그리고 아버지와 인연을 끊고 살아간다. 아버지 역시 그 후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을 보인다. 지인들에게 술만 마시면 자살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고 한다. 이 모든 실마리는 아들 한 씨가 시간이 지나 그 기억을 잊지 못하고 주변 사람에게 넘어가듯이 말했던 것을 경찰이 강력팀에 이야기하면서 그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던 마산 살인사건은 이미 65세의 나이로 자신의 방에서 홀로 자살로 보이는 사망을 한 한 씨의 아들 한 씨의 주변을 찾아가다가 우연하게 아버지 한 씨가 콘크리트 혼화제를 공급하는 사업을 30여 년 동안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최 씨와 인연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때 나온 DNA는 관련된 사람들을 모두 조사했지만 불일치했었다. 그렇지만 아들 한 씨의 DNA와 일치했던 것이다. 9년의 시간은 그렇게 그를 쫓아다녔다. 


돈은 세 사람의 인생을 모두 끝내주었다. 순간적으로 벌은 돈에 빠져 그 돈을 펑펑 쓰면서 신뢰나 자신의 불행한 미래를 알 수 없었던 최 씨, 그런 근본이 없었던 그와 인연을 맺은 아버지 한 씨, 핏줄이라고 해서 도움이 되려 했던 잘못된 선택을 한 아들 한 씨는 모두 그렇게 악연으로 이어졌다. 동업을 할 때 관계를 파탄으로 이끄는 것은 두 가지다. 사업이 아주 잘되거나 사업이 잘 되지 않는 경우다. 살면서 필요한 분노도 있지만 그 분노가 자신을 모두 잠식할 때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아들 한 씨는 감옥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을까. 2004년 그리고 2013년의 시간은 그에게 어떻게 기억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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