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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Nov 10. 2023

용감한 시민

힘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 정의로운 한방을 생각해 본다. 

학교폭력과 교권이 무너진 것은 단순한 어떤 특정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은 교권에 침해를 받는 선생이라던가 피해학생으로 보이지만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사회가 그렇게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학교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힘이 있다면 짓누를 수 있고 어떤 죄를 지어도 그 죄는 가벼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나 언론에서 떠들어봐야 그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다면 똑같은 문제는 계속 발생하게 될 것이다. 


용감한 시민은 마치 마동석의 범죄도시와 비슷한 느낌을 가진 영화다. 주인공이 마동석이 아닌 신혜선이 보여줄 뿐이다. 신혜선을 보면 영리한 배우라는 생각도 든다. 처신도 깔끔한 편이지만 주변에 잡음이 많지 않으며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한다. 적당하게 좋은 배역을 맡으면서도 비중이 있는 배우라면 맡지 않을 배역까지 맡아서 연기를 한다. 비교적 큰 키에 잘 관리된 몸으로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고 있다. 전형적인 미인은 아니지만 호감형이라고 할까. 

용감한 시민이라는 영화에서 신혜선은 복싱 유망주였다가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기간제 교사를 맡은 소시민의 모습이다. 오랜 시간 운동을 한 사람으로 그려지는데 많은 연습을 통해 강도 높은 액션을 소화한다. 가면을 쓰고 정체를 숨긴 채 싸우다 결국 치렁치렁한 머리가 드러나며 상대가 여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끝내 가면을 벗어던진 소시민이 한수강을 노려보며 머리를 묶는 모습이 시원한 느낌마저 준다.  

영화는 단순한 선악구도다. 학교폭력과 현재 한국 교권의 현실이다. 모두가 공감할만한 내용이지만 영화에서처럼 해소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은 안다. 그렇지만 그런 작은 가능성 속에 용감한 시민이 있으면 어떨까란 생각을 한다. 영화 속에서 한수강은 자신이 괴롭히고 싶은 타깃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 집안이 그를 그런 괴물로 만든 듯하다. 가해학생은 반드시 부모가 그런 모습을 가지고 있다. 아이는 그냥 혼자서 괴물이 되지가 않는다. 불의는 못 본 척해야 하고 성질은 없는 척해야 하며 주먹은 약한 척하고 그저 정규직 교사가 되기 위해 조용히 살려고만 했기에 가면이 필요했다. 

스스로를 다진 사람은 불필요한 폭력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도 도저히 참을 없게 된 신혜선이 “선은 네가 먼저 넘었다”며 한수강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통해 불의와 대결하는 소시민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를 살린 것은 신혜선의 액션이었다.  

실제 한국사회에서 용감한 시민은 많지가 않다. 그렇기에 문제가 생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공격할 때 같이 공격하는 양상이다. 한 번 공격을 시작하면 단체를 이루어서 집단으로 공격을 하는 것이 우리 시민들의 모습이기도 하다. 문제가 생겼어도 모른 체하다가 공론화되고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때에 용감해지는 것은 정말 용감한 것은 아니다. 누구도 나서지 않을 때 관심을 가지고 메시지를 던지고 말하면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다수와 함께 움직여서 정의를 구현하려고 하려는 것을 용감한 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행동하는 시민은 항상 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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