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Nov 12. 2023

김제 愛 여행 in

만경강 물줄기를 떠라 바다로 떠나가는 김제의 여정길 

내일, 한 달, 1년 뒤의 자신에게 일을 미루는 것은 미래의 자신에게 빚을 지는 일이다. 그러게 미루는 삶을 살다가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의 자신과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무슨 말을 할까. 아마도 좋은 이야기는 하지 않을 듯하다. 오늘의 내가 편하고자 혹은 재미있게 살고자 외면했던 일들과 시간은 차곡차곡 쌓여 결국 미래의 나에게 전이가 된다. 강물이 좋은 이유는 끊임없이 이어짐에 있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냥 흘러가며 생명을 살리고 풍경을 만들고 계절의 변화를 만들어낸다. 

풍요로운 땅을 품은 김제를 흐르는 대표적인 강은 만경강이다. 완주군 동상면 사봉리 675m 지점 남서쪽 계곡에서 발원한 만경강의 길이는 81.75㎞로 넓은 들 가운데로 흐른다는 뜻이 담긴 만경강은 이 강 하류지역에 만경현(萬頃縣)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다. 

물이 흐르는 것을 긴 관점에서 본다면 순환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순환하는지는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 물이 그대로 흘러가는 것은 알 수는 없다. 김제의 만경강이 흘러가는 물줄기를 따라 가을 여정을 시작해 본다. 

오랜 시간 전에 만경강은 흐르는 지역은 660년 백제가 패망한 이후에 잠시 당나라가 지배한 적이 있었다. 백제의 두내지현(豆奈只縣, 또는 豆乃山縣)이었는데, 663년 당나라 치하에서 순모(淳牟)로 고치어 고사주(古四州: 지금의 古阜)의 영현으로 하였던 것이다. 김제에서 지금 고군산군도라고 불리는 지역은 멀지 않았기에 역사적으로 같이 활용되었다. 

김제지역에는 전선포를 비롯하여 조금 더 나아가면 멀지 않은 곳에 군산도(群山島)는 고려 때부터 조선(漕船)과 중국 무역선의 기항지로 번영하였고, 군사적으로 중요하여 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고군산군도를 포함하여 김제의 일부지역까지 새만금지역에 포함이 된다. 

만경강 지역은 상류지역을 제외하고는 유속이 매우 느린 전형적인 곡류하천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천천히 시간이 느리게 가는 여정의 길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과거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교통의 요충지였던 만경현은 현재 김제시 만경읍에 편입되었다. 

김제의 고사마을에서 시작한 여정은 심포항까지 이어지는 고즈넉한 가을의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고군산 군도와 백합죽으로 유명한 계화도와 가까이 있었던 전선포는 어선이 닻을 내리는 항구였다. 고려 후기에는 해군기지와 같은 군항이었으며 서해에 접하고 있는 반도로서 제일 서쪽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고 전북 내륙으로 들어오는 입구였다. 

가을의 수채화는 봄의 수채화와 느낌이 다르다. 약간은 쓸쓸한 듯한 느낌의 풍경이 펼쳐지는데 차분히 내려앉은 색채감이 오래도록 마음속에 여운을 남긴다. 만경강은 폭이 넓은데 어떻게 흘러가는지 자세히 보아야 알 수가 있다. 

전선포의 이름을 그대로  쓴 전선마을과 여정의 출발점이기도 한 고사마을 그리고 망해사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보인다. 김제의 새 바람길이라고 부르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있는 배는 바다로 나갈 생각이 있는 건가 궁금하다. 비가 정말 많이 오더라도 이곳까지 물이 찰지 궁금하다. 물이 들어올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풍경에 배 한 척은 제법 어울린다. 

요즘에 스마트 정류장도 만들어지고 있는데 이토록 아날로그 스타일의 정류장을 보면 조금은 색다르다고 할까.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잎만이 정류장에 남아 있다. 

앞서 말했던 전선포에 대한 이정표가 보인다. 자신의 인생을 바다라고 비유할 수 있다면 고독함은 그 위를 쉬지 않고 오가는 파도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오래된 풍경을 만나기를 포기하지 않는 모양이다. 

만경강에서 가장 사랑을 받는 사찰이 바로 망해사다. 망해사는 754년(경덕왕 13) 법사 통장(通藏)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642년(의자왕 2) 거사 부설(浮雪)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는 사찰이다. 진묵대사가 지은 낙서전(樂西殿), 대사가 심은 팽나무가 보이는 이 사찰은 바다와 가까워서 그런지 몰라도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다.  

석가모니불의 화신(化身)으로 알려져 있는 진묵대사(1562~1633)가 나고 자란 고장이기도 한 김제의 만경읍 화포리는 원래 ‘부처님의 마을’이라는 뜻에서 불거촌(佛居村)이라 불렸던 곳이기도 하다. 당나라에서 자주 오가던 곳이라는 의미의 당진이라는 지명도 있지만 김제 만경권역은 마한과 백제라는 고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곳으로 주요 교역공간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이곳에서는 황금들녘과 코스모스 400리 길을 따라 김제 서부지역 끝에 위치한 심포항과 망해사의 서해 일몰과 서해안의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보며 33km에 뻗어있는 동북아의 허브 새만금 방조제를 볼 수 있다. 

이제 여정의 종착점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망해사에서 심포항 쪽으로 가다 보면 조금은 특이한 지형이 나온다. 새만금방조제가 들어서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활력이 넘쳤던 바다의 도시 심포항은 지금은 조용하고 한적한 느낌을 주지만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는 모른다. 관현악으로 연주되어 여러 악장으로 된 소나타 형식의 악공을 심포니(symphony)처럼 다시 다채로운 연주를 들려줄지도 모른다. 

길게 쭉 뻗은 도로를 가다 보면 바다인지 강인지 알 수 없는 풍경들이 펼쳐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조용한 곳이지만 만들어지게 될 심포 마리나는 2006년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로 지정해제되었던 옛 심포항을 폐 지방어항에 대한 리제너레이션 개념이다. 

완주의 어디선가에서 시작되었을 물의 여정이 만경강을 따라 흘러 이제 새만금을 지나 서해로 흘러들어 가고 있다. 

만경강을 따라 이곳까지 와보니 꽤나 괜찮은 여정이었다. 반짝이는 삶의 순간들은 가을이 찾아온 만경강의 억새들과 소리 없이 흐르는 만경강은 다양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 여정 속의 역사의 순간들을 보았고 사찰이 있는 곳에서 머물러보기도 했다. 성실하게 여행 감성을 수집하며 발견한 풍경 속에 기억을 남겨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성친화도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