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탁류(濁流)에 휩쓸리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본질적으로 황금은 유일하면서 고도로 민감하며 역사적으로 계승되는 수천 년 동안의 정치 금속이었다. 이토록 오랫동안 그 패권을 유지한 화폐가 있을까. 역사속에서 수많은 화폐가 생겨나고 사라졌다. 현재 달러 패권이 오랜시간 전세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과거에도 수많은 화폐들이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힘 겨루기를 해왔다. 남북전쟁이 끝난 미국에서는 금과 은의 패권대결이 있었다. 당시에는 금과 은의 교환 비율이 1:16이었는데 교환비율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서부의 광산에서는 계속 캐낼 수 있었으며 동부는 그렇지 못했다. 동부 금융계의 지원을 받았던 그랜트 대통령은 남북전쟁의 화폐라고 할 수 있는 그린백을 퇴출하고 금을 지급 준비물로 하는 금본위제도의 회귀를 위한 화폐법을 1873년에 통과시켜버린다. 이 충격으로 국제 은값은 폭락하고 미국 서부의 농민들은 빚더미에 오르게 된다. 당시 시대상을 반영했던 오즈의 마법사에서는 그런 농민들을 빚대어서 허수아비로 등장시키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혼란했던 그 시기에 허수아비는 생각하는 현실을 파악하는 뇌를 가지고 싶어하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1939년 영화판에서 도로시는 허수아비에게 “뇌가 없는데 어떻게 말을 할 수 있니?”라는 질문을 하고 허수아비는 “잘 모르겠는데...하지만 사람들도 생각 없이 말을 많이 하지 않니?”라는 대화를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금융권력이 아닌 국민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있는것인가.
영국의 파운드화에서 패권이 미국의 달러화로 넘어간 후에 오랜시간 그 패권을 유지해오고 있지만 그 패권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를일이다. 미국은 베트남전쟁 이후에 부족한 자금을 만들 필요와 함께 사우디등을 보호해주겠다는 명목으로 산업에서 꼭 필요한 오일의 결제대금으로 달러를 기축통화로 만들고 난 후 그랜트 대통령이 통과시킨 화폐법속 금과의 연계를 끊어 버렸다. 닉슨이 다시 회귀할 것 같지 않은 금태환 금지를 선언한 것이 1971년이니 금본위제도로 회귀한지 100여년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인플레이션을 통해 화폐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하락하게 만들어왔다.
한국은 어떤 관점으로 보면 실물가치가 없는 가상화폐를 통해 일부사람들은 도박의 늪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언젠가는 화폐의 변동성은 매우 작으면서 신뢰성 있는 가상화폐가 자리를 잡을지는 모르겠다. 현재 가상화폐에 돈을 넣는 사람들은 투자라고 말하지만 투자라는 것은 그냥 희소성만 있는 것에 돈을 넣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언젠가는 스스로의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블록체인의 기술을 증명했을 뿐 통화로서의 기능이나 투자가치로서의 유의미한 어떠한 것도 증명되지 않았다.
최근 금값이 올라가고 있어서 가지고 있던 금의 일부를 현금으로 교환을 했다. 금을 지폐로 바꾸고 나니 갑자기 금광이 어디있는지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비트코인도 점점 더 사양이 좋은 컴퓨터로 채굴하는 것이 아닌가.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 금을 캔다면 어떨까란 잠시 망상에 차 있기도 했다. 아무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조금씩 모은 금이었지만 지폐로 바꾸고 나서 기분이 묘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은 절대로 끝물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하면서 끊임없이 돈을 넣기를 바라면서 계속 이슈화만 시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드디어 뇌를 얻게 된 허수아비들의 금융권력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이 가상화폐일지도 모른다. 비트코인 등이 가격이 올라가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그냥 채굴 총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화폐로서의 가치를 가지기 위해서는 환금성도 필요하지만 화폐가 가져야 하는 안전성과 신뢰성은 찾아 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냥 근거 없는 믿음을 통해 누군가가 계속 돈을 넣어야 가치가 올라간다는 장밋빛 미래가 있어야 한다. 국가의 경제적인 위기에서 신뢰를 부여하는 고유한 가치는 바로 금에 있었다. 1997년 IMF때 금모으기 운동만 보아도 알듯이 한 나라의 화폐를 믿지 못할 때 신화처럼 등장한 주인공은 금이었다. 화폐를 자유롭게 금과 바꾸어서 역사적으로 경제가 불안할 때마다 흥행이 보장된 주인공처럼 등장하기도 했었다.
앞서 머니 엔트로피를 언급하였다. 화폐의 절대적인 양을 유한한 상품인 금이나 은에 연계시켰을 경우 인구의 증가와 경제규모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가 없었다. 글로벌로 경제블록이 묶이며 화폐의 유통규모가 커지며 결국 금과 결별을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의 비트코인처럼 아주 작게 쪼갠다면 얼마간 유지가 되겠지만 금이나 은은 그렇게 작아질 경우 실물을 확인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런 금의 한계가 금을 모방한 비트코인의 화폐성에 한계를 짓는 요인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 케인즈주의자들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게 아니라 수요가 공급을 창출한다고 보고 있다. 수입이 수출보다 많으면 총수요가 감소하고 국민소득은 줄어들게 된다. 무역적자와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 이어지면 가만히 있어도 우리의 주머니는 가벼워지게 된다. 숨만 쉬어도 나갈 돈은 늘어나고 살 수 있는 것들은 줄어들게 된다. 자영업자들이 먼저 타격을 받겠지만 급여소득자도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게 되면 받는 돈의 희석효과로 인해 주머니와 몸도 가벼워지는 효과를 느끼게 된다. 몸무게를 줄이는 것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벼워지면 좋을텐데 말이다.
한국사회의 가상화폐 열풍은 한국이 가진 근본적인 문제에 기인하고 있다. 한 때 50년 상황을 기준으로 한 대출도 나왔지만 일반적으로 은행에서 부동산을 사기 위해 대출받는 것은 개인의 향후 30년 수입을 한 번에 저당 잡고 미리 가불해 쓰는 것과 같다. 즉 미래 30년 동안 벌 수 있는 돈을 시중에 풀어버렸으니 주택 가격이 오르지 않을 수가 없다. 은행으로 들어갔던 돈이 다시 풀리고 그 돈이 다시 대출이 되는 과정이 반복되면 서민들은 주택을 구매하는 것은 감히 쳐다보지 못할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가상화폐를 주목한 것이다. 은행에서 대출받은 사람은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채무의 속박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평균적인 자산이 프랑스나 일본에 못지 않은 한국 사람들의 경제상황이 나쁘지 않아 보이지만 자산의 비중으로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국 사람들의 자산 중 압도적인 비중은 부동산이다. 부동산 가격의 변동은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클 수 밖에 없다.
부동산에 묶여 있는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내수는 그만큼 오그라들은 경제규모를 이루게 된다. 그 나라의 내수규모를 결정하는 것이 인구이기도 하지만 개개인이 쓸 수 있는 돈의 여력이 얼마나 되느냐도 중요하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압축성장과 서울과 수도권으로의 가속화되는 쏠림현상, 정치권의 이해관계, 부동산으로 계층상승을 이루었던 베이비부머 세대의 기억은 쉽게 바뀔수도 없고 바뀌어지지도 않을 것이다. 내수는 여전히 좁은 시장에 머물러 있을 것이고 수출에 기대는 방법외에 대다수 사람들의 주머니가 윤택해질 가능성이 많지가 않다. 미국인구와 한국인구를 단순 비교해서 경제규모를 예측해보면 최소한 미국의 1/7이상 시장규모를 가지고 있어야 하지만 사실 그렇지는 못하다
은행에서 대출받지 않는 사람들은 더욱더 그 미래가 비참해져서 은행에 내미는 채무 사슬에 얽어매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어 가난해질 수 밖에 없다. 미래에는 안정적인 도량형 화폐가 없이는 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이룰 수 없으며 시장의 자원을 합리적으로 분배하기란 더욱 힘들다. 그렇다면 가상화폐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누군가 만들어놓고 흥행하게 만든 기득권의 일부를 제외하고 부모세대보다 빈곤할 것이라는 2030 세대의 돈이 그냥 그들끼리 모아주기 하는 것외에 유의미한 의미가 없다.
지금도 여전히 언론은 사람들에게 실체적 진실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 GDP가 증가하게 되면 마치 한국경제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처럼 쓰지만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는 사실 거리가 멀다. 마치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자신의 근력보다 더 힘을 내서 근육을 만들기 위해 스테로이드와 같은 약물을 처방하는 것과 유사하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정부는 채무 화폐를 늘려 경제 고혈당을 만들어 냈다. 좋은 채무가 있을 수도 있지만 보통 채무는 그 자체로 경제 혈관을 취약하게 만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증권이나 부동산 시장에 가라앉아 경제 혈관을 막히게 만들게 한다.
가상화폐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이야기하는 언론은 거의 없다. 그냥 화폐의 가격만을 두고 말하는 언론과 그것이 거품이라고 대응하는 일부 언론만 있을 뿐이다. 가상화폐가 이렇게 한국사회의 중요 이슈로 등극하게 된 데에는 이 사회가 오랜 시간 경제적인 고질병을 앓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음속의 나침판이 원하는 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만 있으며 그 틈새를 파고 들면서 유튜브등에서는 사기꾼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우리에게 꼭 필요한 돈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야 된다고 말하면서 박탈감은 더 커져가고 있다. 인스타에서 사람들의 돈을 약탈하기위해 가장 많이 하는 것이 바로 자신이 가진 것을 자랑하는 것이다. 비교적 사기에 대한 판결이 너그러운 한국의 현실속에서 약탈은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다. 죽어서도 돈이 없으면 존엄한 최후조차 맞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영화 갓 오브 이집트에서조차 죽을 때 돈이 없으면 영혼을 빼앗기기조차 하지 않은가. 돈의 맛이라는 것은 결국 권력의 맛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비교적 용이하게 해주고 편리하게 해주는 힘이 돈에 있다. 다만 돈의 탁류에 휘말리지만 않으면 자신만의 삶을 영위할 수가 있다. 적어도 위선과 허상뿐이 없는 돈의 약탈이라는 탁류에 휘말리지만은 않는다면 본전은 지킬 수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꼭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너무 많은 것은 미치지 못한 것만도 못하게 되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