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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7. 2017

미녀와 야수

여자는 야수를 남자로 만든다. 

어릴 때 책으로 읽어보고 디즈니가 만든 환상적인 애니메이션으로 이미 접해봐서 스토리는 익숙한 미녀와 야수가 제대로 실사화된 것은 프랑스에서 제작한 한 편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엠마 왓슨 주연의 미녀와 야수는 어떨 것인지에 대한 기대는 또 다른 것이었다. 너무나 뻔한 스토리를 어떻게 환상적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제작사에서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엠마 왓슨 주연의 미녀와 야수는 황홀한 영상미와 디테일은 익숙한 스토리를 충분히 상쇄하고 남음이 있었다. 화려한 색채감뿐만이 아니라 영화 속에 삽입된 익숙한 OST는 보는 내내 귀와 눈을 즐겁게 해주었고 이 정도면 웰메이드 한 영화라고 칭찬을 받을만했다.  


영화를 봤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는 벨을 김치녀라고 비하하는데 벨은 김치녀가 아니라 속이 꽉 찬 여성으로 요즘 보기 드는 캐릭터이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의미 있는 대화를 좋아하는 그녀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이상한 소녀 취급을 받아온다. 사실 책을 읽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책을 잡고 있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활자를 읽는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것은 문자를 읽지 못하는 문맹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문자를 읽을 줄 아는데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문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생각의 근육을 지속적으로 키워온 벨은 마을에서 그녀와 대화할만한 남자가 없다는 것에 한탄해하며 언젠가는 열릴 확 트인 세상을 꿈꾼다. 저 너머에 왕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와 대화할 수 있는 진정한 상대를 꿈꾼다. 

미녀와 야수의 시대적 배경이 흑사병이 유럽을 휩쓸고 갔던 시대를 그리고 있다는 것은 설정인지 아니면 어릴 때 미녀와 야수를 제대로 읽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벨의 아버지는 대도시에서 그녀를 지키기 위해 외딴섬 같은 마을로 흑사병을 피해 피신해온다. 딸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흑사병에 걸린 와이프를 두고 피신한 셈이다. 벨을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벨의 아버지를 계속 괴롭힌다. 벨과 벨의 아버지 모두에게 장미는 결코 잊지 못할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가스통은 전형적인 마초남 혹은 허세남을 대표한다. 그럴듯한 허우대를 가지고 있는 그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좋아하는 상징적인 남성상을 가지고 있다. 머릿속에 들은 것은 없지만 적당한 외모와 나르시시즘을 연상케 할 정도의 자신감은 조그마한 마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만든다. 가스통은 대체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모르고 왜 의미 있는 대화를 해야 하는지 이해 못하는 그런 남자다. 그런 가스통이 벨에게 들이대니 벨이 좋아할 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왜곡된 남성상을 모든 여자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국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벨에게 압박을 가하기 시작한다. 

어릴 때 읽어보았던 어린 왕자와 나이 들어서 읽은 어린 왕자가 다르듯이 어릴 때 보았던 미녀와 야수와 이번에 본 미녀와 야수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그냥 왕자 찾기 영화처럼 보였던 그런 스토리가 남자와 여자의 역할 그리고 진실한 사랑이 무엇인지 다시금 되돌아보게 한다. 바람둥이 같은 카사노바나 허세남 혹은 유약남 등을 제외하고 제대로 된 남자는 대부분의 여자에게 야수이다. 여기서 말하는 야수는 폭력적이라던가 남녀차별주의자가 아닌 그냥 친절하지 않은 그런 느낌의 남자.. 즉 다듬어지지 않은 돌 같은 느낌이랄까.


꼭 미인이 야수를 남자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진실된 마음이 있는 여자가 야수를 남자로 바꾼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에게는 한없이 부드럽고 수줍음을 타고 때로는 어리광을 부리는 그런 빈틈 있는 남자가 된다. 남자와 여자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생각하는 것이 너무나 다른 것은 뇌의 설계구조상 어쩔 수 없는 듯하다. 그렇게 보면 남자가 여자보다 훨씬 유약한 것 같다. 자신이 상처받을까 봐 야수처럼 굴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일부러 거칠게 말하는 그런 야수.. 그 속에 부드러움이 있지만 그걸 보여주기 싫다. 그것이 사회가 원하는 남자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미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들어서 외울 정도로 익숙한 OST를 듣는 것도 즐거웠고 화려한 의상과 상당한 수준의 실사화는 영화의 재미를 배가 시켰다. 누구나 알고 있는 스토리를 각색도 하지 않고 지루함이 느껴지지 않으면서 완성도 있게 만든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캐릭터들 각각이 모두 살아 있는 영화 미녀와 야수는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야수가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무척 즐겁게 그려냈다.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야수에서 남자로 변한다는 설정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클라이맥스를 위한 것이고 그 과정의 디테일이 꽤나 괜찮다. 주연인 엠마왓슨을 비롯하여 루크 에반스, 댄 스티븐스, 이완 맥그리거, 이안 맥켈런, 엠마 톰슨, 케빈 클라인, 스탠리 투치까지 합류한 영화 미녀와 야수는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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