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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0. 2017

루시드 드림

좋은 소재를 이렇게 망치나

루시드 드림은 딸바보와 아들바보 두 명이 만나서 누가 누가 더 자식사랑을 잘 실천할 수 있는지를 중심에 담아놓고 거기에 억지스러운 자각몽과 공유몽의 콘셉트를 욱여넣어  만든 영화다. 자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 꿈이라고 생각하면서 꾸는 꿈이며 공유 몽은 그 꿈을 꾸는 사람의 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크리스토퍼 놀란의 걸작 인셉션에서 꿈속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목적한 바를 이룬다는 내용은 다루어진 적이 있다. 


루시드 드림이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앞서 나온 인셉션하고 확실한 차별성이 필요했다. 그런데 영화의 상영시간이 끝날 때까지 그냥 인셉션의 아류작이구나 혹은 인셉션의 한국 스타일 번역 버전인가?라는 생각만 들었다. 우선 고수의 연기도 매우 어색했다. 시종일관 진지하기만 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연기 깊이는 느껴지지 않는 그냥 평범한 연기의 반복이었다. 대기업 비리 고발 전문 기자인 대호는 3년 전 갑자기 아들이 납치당한다. 그리고 그 아들을 찾는 아빠의 지루한 싸움이 반복된다. 

3년 전에 납치를 당하고 나서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설정 그리고 반드시 살아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찾아다닌다는 설정 자체가 루즈했다. 우선 긴장감이 떨어진다. 납치를 당하고 나서 보통은 그렇게 오래 살아 있을 수 없다는 앞선 사례 조사가 부족했을뿐더러 3년이랑 시간 동안의 주인공의 내면 변화가 스크린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우선 시나리오의 개연성이 상당히 부족하기도 했지만 자각몽을 꾼다는 설정의 논리도 빈약했으며 단서를 찾아가는 중간중간이 듬성듬성해서 저렇게 아주 우연하게 실마리를 찾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공유몽의 대가(꼭 컴퓨터 해커 같은 콘셉트의 묘한 이질감)와의 만남이나 그냥 아들을 잃어버린 아빠임에도 불구하고 형사와의 공조수사를 하는 듯한 설정은 어색하기만 하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 혹은 믿을만한 사람을 범인으로 설정하는 아주 익숙한 플롯에 옛날의 도움을 잊지 못해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할아버지의 등장은 이런저런 설정을 모두 집어넣어 잡탕이 되어버린 패착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루시드 드림은 전체적으로 일관성이 있었다. 빈약한 스토리, 빈약한 연기, 빈약한 설정, 빈약한 캐릭터까지 4박자가 모두 착착 들어맞는 영화다. 


2017년 3월 10일 상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국을 기리며...

“이 사건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고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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