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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6. 2023

해무

정신적, 육체적으로 결함 있는 치명적인 조합

해무라는 영화가 재미가 없지는 않지만 기분이 유쾌한 영화는 아니다. 강간범이 되기 바로 직전의 발정 난 남자와 자신이 이루어 놓은 것을 절대 뺏기지 않으려는 선장, 문제 많은 인생을 살았음에도 신기하게 생명을 중시하는 도망자, 맹목적인 남자들이 한 배에 타서 일어나는 일을 그리고 있다. 특히 이들 간의 관계를 망가트리는 가장 큰 요인은 성욕을 주제 하지 못한 남자들 간의 다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강간범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는데 남자는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의 두께가 얕을수록 그리고 자신을 제어할 수 있는 제어장치를 풀어놓을수록 동물적인 모습으로 바뀐다. 그들은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본능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한 때 여수 바다를 주름잡던 ‘전진호’는 더 이상 만선의 수확을 거두지 못하고 감척 사업 대상이 되며 강선장은 어떻게든 자신의 배를 지키려고 한다. 그런 강선장과 함께 배에 숨어 사는 인정 많고 사연 많은 기관장 완호, 선장의 명령을 묵묵히 따르는 행동파 갑판장 호영, 돈이 세상에서 최고인 거친 성격의 롤러수 경구, 언제 어디서든 욕구에 충실한 선원 창욱, 이제 갓 뱃일을 시작한 순박한 막내 선원 동식까지 여섯 명의 선원은 불법적인 일에 뛰어들게 된다.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사람, 한 가지 가치만을 중요시하는 사람, 합리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 그냥 본능에 충실한 사람, 애매하게 순박한 사람은 모두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게 된다. 세상은 한 가지로만 볼 수도 없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때론 불합리한 선택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가 있음을 알아야 하지만 그들은 제어하기 힘든 환경에서 최악의 선택을 하며 결국 모두 죽음에 이르게 된다. 

배를 여러 번 타본 적은 있지만 망망대해에서 배는 때론 하나의 갇힌 감옥이며 탈출구 없는 공간이라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 단순하게 일을 하는 선원들은 거칠기 이를 때가 없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밀항을 하려는 사람들을 태우면서 이들은 삶의 막장으로 달려가게 된다. 밀항을 하려는 사람들을 실었지만 그들을 안전하게 육지에 도달하게 하고 자신들도 잡히지 않으려고 하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해무’가 몰려오고 그들은 걷잡을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런 상황 속에서 본능만으로 사태를 해결해보려고 한다. 

밀항을 하려는 사람들 속에 여성이 몇 명이 섞여 있었는데 이들에게 선원들은 욕정을 풀 대상이었다. 어차피 그들에게 말하려는 여자들은 그냥 성욕을 해소할 수 있는 암컷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들에게 인간성이라는 것이 과연 있을까. 그 속에서 뱃일을 한지 얼마 안 되는 동식은 이상한 순애보를 보여주며 상황을 더욱더 꼬이게 만든다. 밀항자 중 홍매는 선원들이 한 번씩 짝짓기를 해보고 싶은 대상이었다. 홍매가 자신만을 마음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동식은 선원들에게서 그녀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사고로 인해 밀항자들이 몰살을 당하게 되고 이들은 물에 뜨지 않고 물고기밥이 되기 위해 사체를 훼손하여 바다에 버리기 시작한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어야 하지만 동식이 숨겨놓은 홍매 덕분에 이들은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그녀와 한 번 잠자리를 하겠다는 선원들과 동식은 다투게 되면서 살인이 일어나게 된다. 

특정한 상황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속인다. 그걸 순수하게 바라보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면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숨기는 것에 대해 알지를 못하게 된다. 그 결과는 치명적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모든 상황과 요소를 제거하고 나서 그 사람을 보면 악의가 없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상황이 만들어지게 되면 그 모습에 맞춰서 상대를 속이고 혹은 기만하는 것이 사람이다. 아무튼 해무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결함 있는 치명적인 조합으로 만들어낸 인간의 군상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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