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길

선비들의 흠모대상이었던 최치원의 창원 월영대

순례라는 것은 특정 종교의 성지 등을 찾아가는 것을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역사 속에서 흠모의 대상이 되고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어려운 사람들도 적지가 않았다.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공감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게 된다. 그것이 순례길이다. 여러 동기를 가지고 순례를 떠나는 것은 결국 정신적인 완성을 위한 발걸음이기도 하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선비라면 누구나 흠모했던 사람이 있다. 문장후 최치원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MG0A4802_новый размер.JPG

마산은 도시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전에 지금과는 풍경이 많이 달랐다고 한다. 마산이 바다와 면해 있는 만큼 백사장이 펼쳐지는 그런 풍경이 이곳에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항구가 만들어지고 매립되면서 도시로 그 모습이 바뀌어 있다.

MG0A4804_новый размер.JPG

경주는 오래된 역사를 가진 도시다. 경주를 본관으로 하는 경주 최 씨는 최치원으로 시작이 된다. 최치원이 다른 본관의 성씨와 다른 발길을 한 덕분에 전국에 최치원과 관련된 많은 유적이 남겨져 있다.

MG0A4805_новый размер.JPG

창원의 대로변에 자리한 작은 역사적인 공간의 이름은 월영대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25호로 지정이 되어 있는 월영대는 아름다운 바다와 백사장이 있는 합포만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대로 즐길 수 있었던 곳이다. 문창후 최치원의 합천의 해인사로 들어가기 전에 말년에 제자들을 가르던 장소였다고 한다.

MG0A4806_новый размер.JPG

월영대는 최치원이 직접 쓴 것으로 2.1미터 높이의 비석에 앞. 뒷면에 글씨가 있었다고 하지만 심하게 마모되어 알아볼 수는 없다. 1691년(숙종 17)에 최위가 창원도호부사로 부임하면서 이곳을 정비하고 중수비를 세웠다고 한다.

MG0A4809_новый размер.JPG

월영대의 뒤편에는 공원이 조성이 되어 있다. 최치원은 이곳에 대를 쌓고 해변을 산책하며 제자들에게 어떤 학문을 가르쳤을까.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한 수많은 선비가 이곳이 많이 순례지처럼 찾았다고 한다.

MG0A4814_новый размер.JPG

대(臺)라 함은 무언가를 세워놓는다는 의미가 있다. 사람으로서 대를 쌓는다는 것은 자신만의 길로 우뚝 솟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창원도호부사 최위는 '천세만세에 유린되지 말라'라고 한 유허비를 동편 중앙에 세웠고, 서편에는 1930년경에 최 씨 문중에서 추모비를 세워 팔작지붕 비각 안에 안치하였다.

MG0A4816_новый размер.JPG

워낙 많은 생각을 가졌으며 세상을 통달한 듯 글을 남겼던 최치원이기 때문에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다. 그는 사람이며 신선이기도 했으며 어떤 관점에서 보면 신이 되었던 사람이었다.

MG0A4818_новый размер.JPG

이곳은 창원특례시의 마산합포구의 합포동이다. 합포라는 지명이 그대로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신라 경덕왕이 즉위하여 전국의 지명을 고치고 행정구역을 새로이 정할 때 굴자군은 ‘義安郡’으로 하고 골포를 ‘合浦’ 또는 ‘合浦縣’으로 고치면서 역사 속에서 등장했다.

MG0A4819_новый размер.JPG

마치 순례를 떠나듯이 전국에 있는 최치원의 수많은 흔적을 찾아가 보았다.

MG0A4820_новый размер.JPG

그렇게 세상을 떠돌면서 살았던 최치원은 신라의 시대가 저물 것을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고운 최치원은 이런 시문을 남긴다.


구름 가에 정자를 지어 놓고

조용히 선정(禪定)에 들기 40여 년

지팡이는 산 밖에 나가본 일 없고

붓은 서울로 가는 글 안 쓰네

대나무 숲에 샘물소리 졸졸

송창(松窓)에 햇빛이 성그네

맑고 높은 경지를 옳다 못하여

눈 감고 진여를 깨치려 하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겨울 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