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의 양반마을

옥천구읍의 중심에 문향헌과 괴정현이 자리한 춘추민속관

구한말 1900년대 초 대전은 기차역이 놓이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주변지역에도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옥천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옥천분들은 중심지를 구읍과 신읍으로 구분하여 말하기도 한다. 수백 년을 그 자리에서 지켜온 고택들이 있는 구읍지역에는 지역의 유지이기도 했던 육영수여사의 고택을 비롯하여 사연이 있는 고택들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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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민속관이라고 불리고 있는 고택은 옥천의 구읍의 중심에 자리를 하고 있다. 1905년 옥천역이 생기기 전까지 이곳은 옥천의 중심이 되었던 공간이다. 참고로 옥천역이 자리한 일대는 신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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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민속관에는 두 고택이 있는데 문향헌은 1760년(영조 36년) 김치신이 자신의 호 ‘문향(聞香)’에서 이름을 따 지은 집이고, 1856년 지은 괴정헌은 구한말 문신 오상규가 태어난 곳이다. 원래 문향헌은 와가 85칸, 초가 12칸의 대궐 같은 집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우물 정(井)’ 자 형태의 문향헌과 ‘ㄷ’ 자형의 괴정 헌, 행랑채 등 전통한옥 55칸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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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은 지금 대전 대덕구의 회덕이라는 지역과 함께 유학자들이 살고 있던 곳이기도 하다. 옥천에는 100여 년 세월을 넘긴 옥천 죽향초등학교, 대청호 등이 자리하여 고택 체험과 더불어 여유로운 나들이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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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이곳에서 태어난 독립운동가 범재 김규홍 선생이 1910년 독립운동 자금 마련을 위해 사랑채와 안채까지 팔면서 여러 주인을 거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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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향헌 안뜰에는 100년은 족히 됐을 법한 석류나무가 있어 고즈넉한 고택의 풍경에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데 사람은 없지만 마당 한가운데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문향헌 앞에 서서 넉넉한 품을 열며 주인인 양 손님을 맞이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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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나무는 예로부터 상서로운 나무로 여겨져 정승집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것으로 나무와 함께 물을 긷는 아담한 우물이며 장독대들이 고택에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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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의 공간은 수집한 향토 민속유물들을 구경할 수 있는 전시관, 그리고 안채와 전통한옥 민박을 할 수 있는 별채가 있으며 나지막한 담장 안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춘추민속관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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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이 놓이게 되면서 도시는 많은 것이 바뀌게 된다. 춘추민속관이 자리한 이곳에는 관아, 객사, 향교가 있었으며 양반들이 주로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한옥 형태의 주택은 많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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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은 어떤 관점에서 보면 조용한 계절이다. 그저 쉬고 기다리며, 봄날이 다시 올 것을 알고, 쑥쑥 성장할 다음 계절에 대비하는 시간이다. 과거에서 변하여 지금의 오래된 고택으로 남아 있지만 사람의 삶은 일관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않으며 유동적인 것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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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진실한 완벽함도, 불완전함도 모두 존재하며 배우는 모든 것은 여정의 일부분이며 그 자체만으로 선물이 될 수가 있다. 때론 불완전한 것에 대해 불안할 수도 있지만 오래된 것을 보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오래됨의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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