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허난설헌 기념공원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였을까.

호가 난설헌이요. 이름은 초희인 한 여성의 기구한 이야기는 지금도 화자 되고 있다. 역사의 기록 중에 여성의 성이 아닌 이름이 남겨진 경우는 많지가 않다. 이름이 남겨졌다는 것은 그만큼의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은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계속 그것을 전가한다. 속에 상처가 있다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비틀림이 있다면 상대를 삐딱하게 바라보게 된다. 자신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고 아무리 좋은 것이 상대에게 있더라도 알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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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강릉에는 허균과 허난설헌의 이야기가 남겨진 기념공원이 있다. 강릉시는 지속적인 열린 관광지 조성으로 솔향수목원, 통일공원, 허균허난설헌 기념공원을 비롯하여 정동진 모래시계공원, 경포 해변, 강릉커피거리, 연곡솔향캠핑장등 열린 관광지 7곳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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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행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잘 자라났다. 명망이 높았던 아버지 초당(草堂) 허엽(許曄)은 자식들에게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었을 뿐만이 아니라 4허(四許)라고 불리며 오빠 두 명과 아래 동생인 허균과 자신까지 문사의 기질을 보았던 이들 집안을 부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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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허균과 허난설헌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녀의 삶을 살펴볼 수가 있다. 어릴 때의 그 행복한 일상은 그녀가 결혼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안동 김 씨 집안의 남편을 맞이했지만 공부도 제대로 못했고 매일 술집을 다니며 살았던 모양이었다. 게다가 허난설헌과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도 안되어 그녀를 홀로 외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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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방에서 눈물로 지새우는 날이 많았으며 달을 보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지만 남편에 대한 애정을 자식들에게 옮겨 정성을 쏟았고 어린 남매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인생의 재미를 느끼게 된다. 그런 행복한 순간은 오래가지가 않았다. 두 자식이 연이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지난해엔 귀여운 딸을 잃었더니

이번 해엔 사랑하는 아들마저 잃었네

가슴 메어지도다, 광릉의 흙이여

작은 무덤을 나란히 마주 세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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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과 허초희는 서로를 지탱하면서 살 수밖에 없었다. 딸과 아들의 무덤을 자신이 사는 광릉 땅 양지바른 언덕에 나란히 만들고 나서 낮은 봉분에 잔디를 심고 어루어만지며 살던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는 상주에서 객사했고 이어 오라버니 허봉은 이이의 잘못을 들어 탄핵했다가 갑산으로 귀양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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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에게 오빠 허봉은 큰 의지가 되었던 사람이었다. 유배에서 풀려난 허봉은 백운산, 금강산 등지로 방랑생활을 하며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병이 들어 금화 생창역에서 객사를 하게 된다. 세상에 그녀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한 명씩 세상을 떠났다. 여전히 남편의 방탕은 쉬지 않고 근면하게 지속이 된다. 그녀의 남편 역시 자신에게 없는 재능과 능력으로 인해 그녀에게 어떠한 사랑도 전달할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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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은 부모를 잘 만났다. 봄 꽃이 피어날 때면 이곳은 허난설헌의 글 읽는 소리를 들어볼 수가 있지 않을까. 허균과 허난설헌은 서얼 출신이지만 조선시대 삼당시인으로 불리었던 손곡 이달에게 글공부를 하게 된다. 서얼이었던 그의 삶은 후에 허균에게 영향을 미쳐 개혁적인 소설 홍길동전으로 탄생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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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신적인 지주였던 가족이 세상을 떠나고 난설헌은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스물일곱의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고택으로 향해 걸어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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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치 없는 일도 없고, 거저 얻는 자유도 없고 오직 모든 것은 제각기 고유한 가치가 있다. 시재로서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았던 허난설헌을 만나러 가는 길에 강릉 허 씨 5 문장으로 불리는 허엽, 허성, 허봉, 허난설헌, 허균의 시비가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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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하면 무슨 맛이 연상되는가. 바로 초당순두부다. 강릉의 깨끗한 바닷물로 간을 맞추어 두부를 만들어서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그 두부의 앞에 붙은 초당은 바로 허난설헌의 아버지 초당 허엽의 호다. 그는 그 두부를 만들어 주변사람에게 주었는데 맛이 좋기로 유명하여 지금까지도 그 이름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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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사한 분홍빛의 얼굴색의 허난설헌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너무 시대를 앞서 갔고 여자로 태어난 것이다. '곳 피고 날 저물 제 정처(定處) 없이 나가 있어, 백마 금 편(白馬金鞭)으로 어디 어디 머무는고. 원근(遠近)을 모르거니 소식(消息)이야 더욱 알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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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희망을 찾는 일이었다. 급기야 집을 나가 오지 않은 남편은 이제 그녀에게 가족으로서의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홀로 다른 사람이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고 시로 노래했던 허난설헌은 툭 떨어지는 왕벚꽃처럼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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