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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15. 2017

싱글 라이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소모하는 사람들

영화 싱글 라이더에서는 이병헌의 연기가 중심이 아니다. 사람들의 사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 점에서 이병헌의 연기는 확실히 영화에 필요한 순간에 녹아들어 갔다. 반전과 희생, 가장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영화의 포장된 면만 본 셈이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몇몇을 빼놓고 모두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노력하면 언젠가는 보장받을 것과 현재를 희생해서 미래를 준비하면 좀 더 밝은 미래가 기다릴 것이라는 것이다. 


글쎄 인생이 그렇게 흘러간 적이 있던가. 현재를 희생해서 더 밝은 미래를 본 사람이 얼마나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조금 더 나은 수익을 보려는 투자자들과 조금 더 나은 환차익을 보려는 대학생이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잘못? 글쎄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충분히 먹이값이 될 자격은 있다. 사회가 공적으로 만들어놓은 보수적인 시스템은 수익은 적게 줄망정 대놓고 사기 칠 수는 없다. 


파생투자를 일삼는 증권사에서 근무하는 지점장이지만 투자하는 그들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했고 호주를 간 와이프와 아들을 위해 살았다고 자부하는 그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덜 악했기에 그리고 덜 욕심을 가졌기에 인간으로 남았다. 그리고 호주로 자신의 와이프를 찾아 떠난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노트북에 남긴 채 말이다. 

본인의 인생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대부분인 한국에서 이런 스타일의 영화가 얼마나 어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사람들이 현재를 희생하여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에 대해 일침을 가해줄 만하다. 이 영화를 보고 얼마나 많은 것을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이병헌의 연기와 기러기 아빠의 슬픔, 워킹 홀리데이를 하는 약자의 슬픔 정도로만 받아들였다면 영화가 주려는 메시지의 기본은 받아들인 셈이다. 

역시 이렇게 잔잔한 영화의 연기자로서 이병헌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공효진의 연기가 이병헌의 연기에 완전히 묻혀버릴 정도로 이병헌의 연기는 두드러진다. 안소희에 비해 공효진의 연기가 더 자연스러웠지만 안소희의 비중이 더 많은 바람에 안소희의 연기 단점이 더 두드러진다. 자연스럽지 않다. 그냥 겉으로 도는 느낌이다. 

현재조차 제대로 살아가지 못하면서 우리는 미래를 준비한다. 기본을 제대로 못하면서 응용을 하려고 시도하는 자칭 전문가인 셈이다. 미래는 언젠가는 현실이 된다. 그 시점이 현실이 되면 다시 미래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자신이 노력한 만큼, 준비한 만큼 자신에게 보답을 하리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기반해서 말이다. 

사람들은 노력을 덜하면서 돈을 잘 벌고 싶어 한다. 노력을 하는 것보다 미래를 위해 벌어 놓은 돈을 전문가(자신의 이득에 최선을 다하는 그런 사람)에게 맡겨 두면서 자신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착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문제가 발생하면 원망한다. 원망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다. 노력한 자신, 미래를 준비한 자신은 문제가 없다. 모든 것이 외부에서 발생한 문제일 뿐이다. 국가는 자신을 지켜주어야 할 대상이지만 왜 자신을 지켜주지 않았을까. 

싱글 라이더의 반전은 생각만큼 충격적이지도 않았고 영화의 매력을 살려줄 만한 정도로 무게 있지 않았다. 반전이 중요한 것이 않았던 싱글 라이더는 한국인의 삶이 어디서부터 문제가 있고 문제가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과 답을 조금은 담고 있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약자는 막연히 옳지도 않고 보호받아야 될 마땅한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는 이 세상에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조금은 따뜻한 세상을 바라보며 한발 한발 나아간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람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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