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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16. 2024

삶의 배수진(背水陣)

관세음보살을 만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의상대사의 낙산사

강원도는 주기적이지는 않지만 크게 산불이 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몇 년 전에도 있었지만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양양군이라는 곳에서도 큰 불이 났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이름만 들어보고 가보지 못했던 양양의 그 유명한 낙산사는 그때의 불로 대부분의 건물이 사라져 버렸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에 위치한 낙산사는 신흥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1년(67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명승이라는 의상대사도 관세음보살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는 관세음보살을 만나고자 이곳 동쪽 벼랑에서 27일 동안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관세음보살은 나타나지 않았고 바다에 투진하려 했는데 이때 보일 듯 말 듯 관세음보살이 나타나 이곳 원통보전(圓通寶殿) 터에 대나무 2그루가 있을 것임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낙산사까지 올라가는 길은 생각보다 시간이 걸린다. 낙산사라는 사찰도 면적이 92,637㎡에 이를 만큼 작은 사찰은 아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사찰 중에 양양의 낙산사는 그 규모가 남다르다.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곳 낙산사를 찾았다. 앞서 화재로 모두 불타버려서 과거 빽빽했던 숲을 보지는 못했지만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참고하여 복원불사에 착수하여 2007년 4월 5일 복원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낙산사를 처음 방문한 사람은 특이하게 생각할 수 있는 문이 이 홍예문이다. 조선 궁궐이나 읍성에서나 볼 수 있는 문이 세워진 것은 조선 세조 13년(1467)에 왕이 친히 낙산사에 행차하여 세운 무지개 형태의 석문이다. 홍예를 조성하는 석재 26개는 당시 강원도의 고을 수를 표시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자신의 조카 단종까지 죽이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전국의 사찰을 돌며 자신의 과오를 되돌아보았던 것 같다. 홍예문을 들어가서도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낙산사에는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셨다는 원통보전, 낙산사 칠 층 석탑, 낙산사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해수관음상등 볼거리들이 많은 곳이다. 

낙산사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로 차를 무료로 곳곳에서 제공을 하고 있다. 겨울에 따뜻한 차 한잔은 소소한 행복을 전해준다. 필자도 차를 한잔 마시면서 낙산사의 풍경을 감상해 본다. 

사찰이 지어진지 1,400여 년이 지났지만 중간 소실되고 다시 세우기를 반복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엇을 간절히 얻기 위해서는 자신이 그만큼 그걸 바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낙산사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개인적으로 이곳 의상대다. 의상이 좌선수행을 했던 곳이라고 전해지는 곳으로 원래는 암자가 있었다고 하나 폐허로 변해버렸고 이후 1925년에 그 자리에 정자를 세우고 의상대라 이름 붙였다. 양양 8경 중 하나이며 관동팔경에 속하는 곳이 바로 이곳 의상대다. 

양양의 바다가 왜 서핑하기 좋은지 이곳을 와보면 알 수가 있다. 파도의 깊이와 주기가 서핑하기에 적합하다. 

양양을 처음 가본다면 가장 먼저 찾아가도록 추천할만한 곳이 낙산사다. 고즈넉한 풍경과 옛이야기 그리고 양양 바다의 매력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의상대사가 그토록 만나고 싶어 했던 관세음보살은 인도 뽀딸라까(potalaka) 산에 머문다고 알려져 있다.  산스크리트어 아왈로끼떼(avalokite)는 '아래를 내려다보는'이라는 뜻이고, 슈 와라(svara)는 '신(神)'을 의미한다. 즉 '(위로부터) 아래를 굽어 살피시는 분'이라는 뜻이  아왈로끼떼슈와라(अवलोकितेश्वर, Avalokiteśvara)로 관세음보살을 칭하는 말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보고 그다음을 이야기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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