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Mar 19. 2017

에밀리 뒤 샤틀레

그녀만은 달랐다네

작가로 명성이 있는 볼테르를 언급할 때 꼭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그의 연인이었으며 주체적으로 행동했던 여성 과학자 샤틀레는 볼테르를 뛰어넘을만한 생각과 두뇌를 가진 사람이었다.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상대성 이론에 사용된 빛의 속도의 제곱은 그녀에게서 출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도 뉴턴의 법칙은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신의 계시와 비견될만한 물리학의 가르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태양을 도는 행성은 뉴턴의 법칙에 따라 돌고 있고 포병에서 계산하는 포탄의 포물선 궤도는 그의 법칙에 의해 정확하게 떨어진다. 뉴턴의 관점으로는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속도와 일치한다고 보았지만 라이프니츠는 에너지는 질량 곱하기 속도의 제곱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뉴턴의 주장은 그 누구도 거스르지 못할 법칙이었다. 그런 그의 법칙에 합리적인 증명을 통해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뒷받침한 사람이 바로 샤틀레다. 


귀족의 집안에서 태어난 샤틀레는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고 한다. 모든 귀족 집안의 여성과 달리 그녀는 남편감을 얻기 위해 노력을 하는 대신 분석 기하 (데카르트)를 읽고 다른 과학자들의 업적을 탐구하고 발견을 하는데 열중이었다. 그녀는 너무 지적이었기에 그 사회에서 외톨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평범한 남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던 그녀는 1733년 어느 날 볼테르를 만나게 된다. 


볼테르조차 뉴턴의 법칙이 옳다고 생각했을 때 샤틀레는 당시 물리학계가 풀어야 할 핵심 질문에 근접한 물리 하계의 진정한 과학자로 에너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볼테르는 뉴턴이 말한 신성한 진리인 에너지는 물체의 질량과 속도의 곱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10kg의 볼링공이 10km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100 단위의 운동량을 갖는다. 


뉴턴에 비하면 변방의 힘없는 물리학자인 라이프니츠는 10kg의 볼링공이 10km의 속도로 움직인다면 1000 단위 운동량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뉴턴의 학설은 과학계에서 정설로 받아들여졌지만 라이프니츠의 주장은 근거가 모호해서 수십 년 동안 인정되지 않았다. 샤틀레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에 흥미를 가졌다. 샤틀레는 토론이나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이 반박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말하기로 유명했다. 그녀가 느리게 이야기할 때는 연구 이론에 대해 말할 때였다고 한다.


그녀는 라이프니츠의 이론을 뒷받침할만한 실험을 주도하고 결과를 제시했다. 라이프니츠의 이론의 틈새를 메웠으며 네덜란드 과학자인 스흐라베잔데의 실험 결과를 적용하였다. 그러고 나서 샤틀레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그녀의 글은 명쾌하면서 반박하기 힘들 정도로 명확했다. 그녀는 다음 연구주제를 고민하기 위해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들과 다른 생각과 지적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샤틀레는 1749년 40세의 나이에 임신을 하게 된다. 이후 출산을 하지만 감염으로 1주일 만에 세상을 떠난다. 볼테르는 그녀가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 이런 말을 한다. 


"나는 나 자신의 반을 잃었다. 나는 그녀의 영혼을 위해 존재해왔다." 


18세기까지는 뉴턴의 주장이 더 우세했지만 샤틀레 사후에 볼테르는 그녀의 유산을 논증하는데 집중했으며 19세기에는 그녀의 주장을 확고하게 만드는데 큰 뒷받침이 되었다. 여성과학자로 과학계의 획을 그을만한 연구를 했던 그녀는 항상 '왜?"라는 질문을 던졌으며 주도적으로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의 R&D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