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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an 25. 2024

3,000년의 기다림

100년 남짓한 인생에서 사람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유라는 것은 무엇일까. 누구나 쉽게 이야기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제각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유를 구속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소원을 빌고 싶다는 욕구는 인류의 역사와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하다.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어지게 해 줄 것 같은 소원은 항상 양날의 칼처럼 우리를 바꾸어놓는다. 천일야화에서 등장하면서 알라딘에서도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으로 등장하는 지니는 정령이다. 인도 신화에 등장하는 신. 비슈누, 브라흐마와 함께 힌두교의 3대 신 중 하나이며 그중에서도 파괴의 신이다.  위대한 영적 에너지 브라흐만의 화신이며, 관능을 상징하는 영혼의 자비로운 목자이기도 하며, 금욕적인 고행자로서 초연한 시바여왕 때 지니는 병에 갇히게 된다. 


사람이 위대해질 수 있는 이유는 항상 앞선 누군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식의 힘으로 사람은 지금과 같은 문명을 이루었다. 즉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다 보면 계속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는데 그 모든 것의 기반에는 책이 있다. 수천 년에 걸쳐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비는 사람들 때문에 병에 갇혀 있다가 한 여인을 만나게 된다. 모든 지식을 이해하고 싶었으며 받아들이고자 했던 그 여인은 결국 자신의 함정에 빠지게 되고 그 여인을 위해 마지목 소원을 듣지 않고 스스로 병에 봉인이 되어버린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서사적으로 알고 있는 알리세아다. 모든 지식을 통달한 듯이 그녀는 사랑을 갈구하지 않게 된다. 터키 이스탄불로 갔다가 알리세아는 골동품점에서 마음이 끌리는 병 하나를 사 오는데 그 병에는 지니가 봉인이 되어 있었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알고 있는 지니에게 마음이 끌린 알리세아는 그에게 사랑을 원한다는 소원을 빌게 된다. 그렇지만 현대문명의 소음공해와 문명의 오염에서 지니는 고통을 받으며 점점 먼지로 변해가게 된다. 

그런 지니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원래 있었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알리세이는 말한다. 그녀는 이후에 3,000년의 기다림이라는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영화는 고대의 판타지 이야기를 펼쳐내면서, 풍부한 상상력과 시각효과의 결합으로 신선한 장면들을 적지 않게 구현한다. 

사람이 정말 갈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손쉽게 사람들은 경제적인 것에 대한 것을 갈구한다고 쉽게 말한다. 무엇을 위해서라는 것은 없다. 개인적으로 자본주의는 결국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아지면서 어떤 형태로든 바뀌게 될 것이라고 본다. 여러 가지 이유로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더 많아지면 결국 그 흐름은 진보로 현재의 틀을 깨버리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는 보수가 그 변화를 막겠지만 모든 변화는 그렇게 시작이 된다. 이 영화는 참으로 독특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그려진 영화다. 자유, 사랑, 시간의 힘이 어떻게 영원할 수가 있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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