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지 않고 움직이는 달이 쉬어가는 영동 황간의 월류정
세상의 어떤 존재들은 관심을 가져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존재감을 드러내지도 않고 멀리 있으면 향이 느껴지지도 않으며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세상에 의미가 있는 것처럼 느끼기도 한다. 해가 저물고 문득 하늘을 보면 낮에는 보이지 않았던 하얀 달이 떠오른다. 한 번도 뒷모습을 보지 못했던 그 달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떠오른다. 거의 사라진 초승달에서 꽉 찬 보름달까지 27.3일(항성월)을 꼬박 돌아 그 자리에 선다.
전국에 많은 지명이 달과 관련이 되어 있다. 밤에 더 아름다운 모습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지구와 달은 중력으로 너무 꽁꽁 묶여 있는 나머지 서로의 앞면만을 보며 공전하게 된다. 27.3일은 동주기 자전이라고 하는데 달의 한 번 자전시간과 같은 것이다. NASA 아르테미스 시리즈의 다음 발사인 아르테미스 II와 아르테미스 III는 각각 2025년과 2026년 말에 인간을 달 표면으로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충북 영동의 황간이라는 지역에 가면 월류봉이 있는데 월류봉은 달도 머물다 간다는 봉우리 이름의 유래는 달이 능선을 따라 물 흐르듯 기운다는 모습에서 유래가 되었다. 아주 잠시동안이라도 머물다 간다는 의미의 이름이 어울리는지 궁금했다.
월류봉은 우암 송시열이 즐겨 찾던 명승지 ‘한천 8경’의 제1경으로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져 나가는 초강천 뒤로 송곳처럼 우뚝한 봉우리 5개가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 월류정은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에 오니 이 모습이 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지 알 수가 있다.
물길은 잠시 멈출 수는 있어서 끊어지지는 않는다. 월류봉을 감싸고 흐르는 물길은 백화산에서 발원한 석천 물길로 반야사에서 월류봉까지 연결된 총 8.4㎞ 길이의 둘레길은 석천 물길 바로 옆 암벽에 매달아 놓은 테크길이다.
‘풍경소리길’ ‘산새소리길’ ‘여울소리길’ 3개 구간을 차례로 만나볼 수 있는데 길 이름이 구간마다의 매력을 만나볼 수 있는 길의 여정의 마침표에 월류정이 자리하고 있다. 저 아래로 돌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설연휴에도 이곳을 보고 싶다고 찾아온 사람들이 보인다.
어떤 인연은 지구와 달처럼 너무나 강하게 묶여 있어서 서로를 바라보면서 먼 길을 걸어가기도 한다. 겨울의 월류봉은 깊지 않은 물살이 가파르게 흐르는 가운데 절벽의 그림자가 드리워 저서 검게 보이기도 한다.
자 이제 아래로 내려가서 물길에 가까워질 시간이다. 비록 달이 떠오르는 시간에 이곳을 찾아가지 않아서 달과 월류봉이 어울리는 모습을 보지는 못했지만 월류정과 화하지도 모자람도 없는 은은한 달빛이 어울릴 것이라는 상상은 해볼 수가 있다.
겨울이라고 해도 이곳에서는 동동(冬冬) 거리지 않고 달(月)이 지나가더라도 세월(歲月)이 서운치 않을 때가 온다. 풍경이 좋기에 이곳을 ‘한천팔경(寒泉八景)’이라 하였는데 산양벽(山羊壁), 청학굴(靑鶴窟), 용연대(龍淵臺), 냉천정(冷泉亭), 법존암(法尊菴), 사군봉(使君峯), 화헌악(花軒嶽)이 그것이다.
흘러내려가는 물소리를 듣고 있으니 저 하늘에 뿌연 하늘도 어울려 보인다. 월류봉 아래쪽에 우암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한천정사(寒泉精舍)와 영동 송우암 유허비가 있다.
월류정이 자리한 벼랑 오른쪽 모래밭에서 샘 줄기가 여덟 팔(八) 자로 급하게 쏟아붓듯이 흘러나온다고 하니 여름에 이곳에 와서 물놀이를 한 번 해봐야 할 듯하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문수바위가 자리한 곳에 영천이라는 곳이 있는데 세조가 목욕하고 피부병을 고쳤다고 한다. 세조는 문수보살의 지혜를 나타내는 반야(般若)를 어필로 남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자리한 사찰이 반야사다. 2019년에 개봉한 광대들:풍문조작단에서 영화 속 광대들이 세조의 미담을 만들기 위해 목욕장면이 나오는데 그곳이 바로 영천이다.
불교에서 사용되는 반야(般若)는 범어로 프라즈냐라고도 하며 단순한 지혜가 아닌 깨달음을 가진 최고의 지혜를 의미한다. 반야란 참모습을 보는 것에 있다. 저 멀리에 있는 달이 끊임없이 움직이듯이 그런 변화를 알고 실상을 바라본다는 월류봉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般若 波羅蜜多(반야 바라밀다)로 시작하듯이 이곳에 잠시 머물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