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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31. 2017

악녀에 대하여

가짜가 가진 향기에 대한 고찰

악녀라고 하면 보통은 측천무후나 서태후 같은 사람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사람의 선입견은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만큼 왜곡되기 쉽고 자신의 판단대로 상대방을 믿는 경향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 악녀는 있어서 악남은 있었나? 나쁜 놈은 있었더도 악남이라고 불렀던 기억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 아리요시 사와코가 쓴 소설을 읽어본 적이 있던가? 읽었다면 한 두권 이내였을 것이다. 1970년대에 그녀는 일본 스타일의 악녀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작가가 태어난 시기는 세계 강국이며 열강으로 불리면서 동남아를 지배하던 제국에서 한 순간에 패망국으로 전락했던 격변의 시대였다.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한국 국민들은 단 한 번도 자긍심을 가졌던 시기가 없었던 반면에 일본은 자긍심을 가졌던 시기가 수십 년 이어졌다는 점이다. 한국의 귀족 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가들은 대부분 몰락했던지 일본에 빌붙어서 먹고살았기에 귀족이라고 불릴만한 계층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른바 한반도에서 천민자본주의의 시작은 광복과 함께 시작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그 뿌리가 깊은 유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교육시스템은 일제가 남겨놓은 흔적과 뒤엉켜서 일본색이 가득한 채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교과서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했다. 한국의 문학은 민족의 아픔만 부각한 채 다양한 색채로의 발전 가능성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일본은 가해자로서의 역사와 나름 피해자로서의 역사도 같이 가진채 종전이 되는 바람에 다양한 형태의 문학작품들이 사회에 나왔다. 


악녀에 대하여는 인터뷰 형식을 빌렸지만 전체적으로 드라마나 연극 등에 어울리는 스토리라는 생각이 든다. 일본이 황금시대를 맞이하기 전의 시대상을 그린 이 소설은 일본에서 여성의 진출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그 과도기 시점을 그리고 있다. 여자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자의 힘을 빌지 않으면 힘들었던 시절에 기미코는 여러 남자(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 말고도 더 있을 수도)와 관계를 맺으며 그들을 적당하게 활용한다. 마치 사업수단이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의 이면에는 그녀의 웃음과 거짓, 기만이 그녀를 철저하게 포장했다. 일본의 경우 결혼할 때마다 성이 남자 쪽을 따라가기 때문에 결혼을 여러 번 했다며 계속 바뀌게 된다. 


수십 개의 사업체를 운영하며 승승장구하던 기미코는 어느 순간 빌딩에서 떨어져 자살(혹은 타살)하게 된다. 하게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자살인지 타살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어느 정도 그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소설을 읽는 사람들을 위해 필자의 결론에 대한 생각을 담는 것은 이곳에 쓰지 않는다. 


작가로 보이는 어떤 사람은 그 진실을 찾기 위해서인지 소설의 소재로 삼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관계된 27명의 사람들을 일일이 모두 찾아가 본다. 사람들은 본인이 처한 입장에서 모든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선과 악의 구분이 모호하다. 최근 한국에서 일어난 아들 살해 부모 사건의 경우 인터뷰를 하다 보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사람이다. 혹은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인터뷰도 적지 않게 나온 것을 보면 인간사가 매우 복잡하고 간단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기미코와 관계되었던 27명의 사람들이 각자 말하는 진실 혹은 자신만의 경험을 보면 크게 세 가지로 구분이 된다. 철저하게 사람들을 이용하였던 악마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천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징검다리로 이용되었던 사람들은 우호적이지도 적대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해리성 정신 장애라고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끼워 맞춰보면 그녀는 철저하게 자신조차도 숨기면서 화려한 미래를 꿈꾸며 불꽃같은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은 분명해 보인다.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면서 우아하고 절대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매력적이면서 화려하되 그 화려함이 분에 넘친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그런 여성 말이다. 사실 그런 여성은 세상에 존재하기 힘들다. 


그녀가 대화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단어 혹은 추임새는 "어라라"다. 일본에서 어라라가 무슨 의미로 다가오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그 말은 그녀를 대표하는 느낌이면서 남자를 혹은 여자를 홀리는 그런 수식어 같다. 그녀가 했던 사업들을 파헤쳐보면 사실 실상이 별로 없다. 누군가와의 사이에서 임신했지만 그걸 적절하게 이용하여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고 그로 인해 종잣돈을 마련한다. 그리고 전후 세대였던 귀족들의 세상에 스며들어 가치를 몰랐던 보석을 적당하게 빼먹기도 하고 바꿔치기도 한다. 그녀가 귀족들의 보석을 노린 것은 아마도 체면을 중시하는 그들이 쉽게 가치를 확인하고 다니지 않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적당하게 활용한 그녀는 숫자놀음을 제대로 하기 위해 야학에 다니면서 부기를 공부하고 그쪽 세계에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그리고 아직 자본주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의 땅을 사고팔고 하면서 적지 않은 부를 모았던 것 같다. 그녀의 사기에 가까운 사업 모델이 먹혔던 것은 그녀의 모습과 신뢰 및 태도였을 것이다. 남들과 다른 분위기와 외모는 그녀의 가장 큰 무기였다.  천사 혹은 악마로 생각하든 간에 공통적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조곤조곤하게 그리고 매우 점잖게 말한다는 점이다. 저혈압이기에 크게 말할 수 없었고 못 배워서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던 어머니에 대한 반발심이랄까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 때문인지 모르지만 항상 예의를 차리는 듯한 말투는 그녀를 대표한다.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옛날은 틀리지 않는 것 같다. 순리에 맞게 모든 것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대인들이 할 수 있는 사기의 기술은 모두 보여주는 듯한 모습과 그녀를 피해자라고 생각하게 만들게끔 하는 고도의 술책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반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모두 바보에 가깝다. 그녀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눈치 챈사람은 여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녀의 내면 속에 숨겨진 차가움과 욕망을 조금이나마 눈치챈 남자는 첫 번째 아니 두 번째쯤, 세 번째쯤 되려나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시기가 조금 모호하다. 첫 번째 결혼식의 희생양이자 가해자(아니 가해자는 아닌 듯... 읽다 보면 알게 됨)였던 그 남자뿐이다. 그 남자만이 유일하게 그녀의 본성을 조금은 엿보았다. 


어쨌든 너무나 화려한 인생을 살았고 잠시 그녀가 꿈꾸었던 세상을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몸의 매력을 감추지도 않으면서 너무 효과적으로 잘 활용했다. 소설 속의 등장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맞춤 잠자리를 제공했다. 아마도  기미코가 궁극적으로 꿈꿨던 세상은 아마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주도적으로 설계한 세상의 정점에서 가장 화려하게 인생의 막을 내린 그녀는 행복했을까? 그녀의 인터뷰가 담기지 않아서 알 수는 없겠지만 그것도 독자의 몫으로 남겨야 할 듯하다. 


돈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먹는 데 있어서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돈이 가진 의미를 다른 사람보다 더 그럴듯하게 살고 있다고 과시하는데 더 큰 비중을 두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에 그녀가 했던 사업(?) 혹은 친교모임은 다단계 사업 초기 모델 같아 보인다. 

이 소설은 2012년 일본 TBS에서 방영된 '악녀에 대해서'라는 드라마에서 방영된 바 있다. 청순한 소녀가 돈과 성공에 집착하는 악녀의 역할을 맡은 배우는 사와지리 에리카라는 배우였다. 


소설속에서도 느끼겠지만 누군가에게 돈을 주면 그 돈이 떳떳치 못한 돈이라 할지라도 돈을 준 사람은 무조건 적인 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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