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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1. 2024

옳은 일이란...

단종을 복위를 꾀하던 한남군 함양에서 생을 마감하다. 

모든 사람에게는 소신이라는 것이 있다. 소신의 크기와 타협하는 방법이나 정도가 다를 뿐이지 소신이라는 것은 있다. 그 소신으로 인해 죽음이나 인생의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면 그 선택을 할지는 누구도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당대에는 가장 중요한 일들이 있다. 단종과 세조 양측면으로 보면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 시대를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함양이라는 곳은 많은 매력을 가진 곳이다. 이곳에는 조선시대에 왕자였던 사람이 잠들어 있다. 세종과 빈으로 봉해진 혜빈 양 씨의 사이에서 한남군이 있다. 한남군에게는 수준군과 영풍군이라는 형제가 있었다. 

이곳이 전주 이 씨 한남군파의 시조이며 세종의 총애를 받기도 했다는 한남군의 묘역이다. 형제들 사이에서 가장 큰 형은 문종이었다. 문종과 그의 아들인 단종과도 사이가 좋았던 듯하다. 그렇게 왕실의 일도 하면서 살아가던 한남군은 다른 형인 수양대군이 왕위에 오르면서 달라 지시 시작했다,. 

함양의 세종의 아들 한남군의 묘역에는 천년의 정원도 조성이 되어 있다. 천년의 세월만큼 시간을 간직하는 정원을 조성해 둔 것인가. 

한남군묘가 이곳에 자리하게 된 것은 바로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수양이 왕이 되고 나서 어머니인 혜빈 양 씨가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바로 처형이 된다. 그리고 사육신 사건이 터지자 친동생인 영풍군과 연루되어 이곳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조카인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군으로 유배를 가자 단종의 복위를 꾀하려다가 발각이 되었지만 세조의 배려로 처형까지는 면하였다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전토(田土)와 노비를 몰수당하고 1459년(세조 5) 배소(配所)인 함양에서 병으로 사망하였다. 

세종에게는 아들도 많았다. 문종(文宗, 推定)·세조(世祖)·안평대군(安平大君)·임영대군(臨瀛大君)·광평대군(廣平大君)·금성대군(錦城大君, 추정 1977년 보수 시 지석 출토)·평원대군(平原大君)·영응대군(永膺大君)·원손(元孫)·화의군(和義君, 추정)·계양군(桂陽君)·의창군(義昌君)·한남군(漢南君)·밀성군(密城君)·수춘군(壽春君)·익현 군(翼峴君)등이 세종의 아들이다. 

세종에게 아들도 많았지만 수양대군으로 인해 많은 형제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올바른 행동이나 소신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입지에 따라 달라진다. 

세종의 아들들의 태실이 있는 곳에 가면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은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받침돌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은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한남군 묘역에 세워져 있는 상은 조금은 귀여워 보인다. 마치 제주도에서나 볼법한 모습의 상이다. 

항양에 대한 기록으로 세종실록에는 모두 38번 나올 만큼 많이 언급됐으며 세조실록에서는 세종의 12남으로 함양군에 안치된 한남군(漢南君) 이어에 대한 기록이 여럿 있다.

조선시대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서는 함양을 토지가 비옥한 ‘산수굴山水窟’이라 적고 있는데 이는 산이 높고 물이 많은 골짜기가 많다는 의미다. 골짜기가 많아서 그런지 고수와 신하균이 나온 영화 고지전을 이곳에서 찍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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