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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r 09. 2024

생명의 바람, 휴식(休識)

삼남에서 가장 으뜸이었다는 청주 신항서원의 봄맞이

청주의 이정골이라는 곳에 봄바람이 불어오고 있다. 갑진년에 가장 에너지가 넘친다는 절기 춘분이 코앞에 다가왔다. 1년 농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춘분에는 새로운 생명의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은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시의 신항서원에서 오는 20일에는 이정골 봄맞이 잔치와 특강이 열린다고 한다. 잔치는 봄나물 머슴 밥상을 받아볼 수가 있고 한 인문교육자가 들려주는 생명역동농법이야기를 들어볼 수가 있다. 

청주에 자리한 신항서원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실 분들은 이정골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종점이기에 내리고 싶지 않더라도 내려야 한다. 농사를 점치는 데 있어서 화투점, 타로점, 주역점으로 볼 수가 있다. 

마을에 들어오니 문화유산 활용으로 3년 연속 우수사업으로 수상이 되었다는 신항서원의 플래카드가 보인다. 예로부터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를 삼남이라고 불렀는데 삼남에서 가장 으뜸이 되는 서원은 바로 이곳 청주의 신항서원이었다고 한다.

선비들이 정치적 화를 입은 사화(士禍)를 계기로 16세기 조선 중기 충북에 입향한 인물들이 선진 사림(士林) 학풍을 전파하면서 명문세족으로 성장하기도 했었다. 

을사사화 후 이들 피화 사림은 서원에 제향 됐는데 충청북도의 보은 상현서원, 청주 신항서원, 충주 팔봉서원, 문의 노봉서원, 괴산 화암서원, 충주 지천서원 등이다.

신항서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마을길은 돌담길이다. '지역문화유산 활용사업'은 잠자고 있던 문화유산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고자, 매년 문화재청이 지자체 공모를 통해 지원하는 사업으로 여유(休)와 치유(識)가 있는 공간. 신항서원도 포함이 되어 있다. 

창건 당시 청주를 대표하는 사림들이 참여해 규암(圭菴) 송인수(宋麟壽), 강수(江叟) 박훈(朴薰), 남계(南溪) 경연(慶延) 등을 배향했고 이후 충암 김정, 송재 한충, 천곡 송상현, 서계 이득윤, 율곡 이이, 목은 이색을 차례로 추가 배향해 모두 아홉 명의 인물이 모셔져 있는 신항서원으로 들어가 본다. 

신항서원은 창건 이후 지역의 스승을 모시는 제향공간인 동시에 지역의 교육과 여론을 주도하는 문화 중심지의 역할을 했던 곳이다.  서원에 배향된 9명의 인물 중 이이와 이색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의 경우 17세기 청주지역을 대표하는 유학자이자 선비로서, 청주에 성리학을 뿌리내린 인물들이라고 한다. 

오늘 나의 마음이 바뀌면 나의 행동이 바뀌고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바뀐다고 한다. 이 세상에 흉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태한 사람, 방만한 사람, 약삭빠른 사람들이 길운을 다 차지할 것이기 때문에 흉운을 섞어 넣음으로써 흉운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마음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이기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 이 세상의 이치라고 한다. 

신항서원은 1년에 한 번은 꼭 찾아가 보는 곳이기도 하다. 신항서원의 경내의 건물로는 4칸의 사우(祠宇), 중앙의 신문(神門)과 양옆 협문으로 된 내삼문(內三門), 6칸의 재실 겸 강당, 5칸의 수호사(守護舍), 묘정비각(廟庭碑閣)·외삼문(外三門)·정문(旌門) 등이 있다. 

사람들의 마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그 정신을 담은 것들에 대한 서적이나 내려오는 말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자신의 과거가 어떤 과정이었느냐에 따라 지금의 나를 결정하게 된다. 변덕스러운 우연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고삐를 틀어쥐고 주인의 삶을 사는 것이 자신의 운을 가로 짓는 것이라고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인지라 나날이 새로운 존재로 변모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라는 말이 있다. 주역에서 불변응만변(不變應萬變)이라는 말이 있는데 작은 것에 집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변화하지만 절대 불변하지 않는 달의 마음으로 산다면 가고자 하는 바를 분명히 하는 것이기도 하다. 

신항서원은 호서지방에서 보은의 상현서원(象賢書院)에 이어 두 번째로 건립된 서원으로 선조 때 창건되었던 신항서원은  임진왜란 때 병화(兵禍)로 훼손된 것을 곧이어 복원하였으며, 1660년(현종 1)에 ‘신항’이라고 사액(賜額)되었다.

봄여름의 나무처럼 외형이 성장했던 전반생을 보내고, 이제 열매를 맺는 나무처럼 내면의 성장을 이루는 후반생의 시작이 중요해진 때이다. 

신항(莘巷)’의 ‘신(莘)’은 ‘이윤(伊尹)’이 탕 임금을 만나기 전에 도덕을 갈고닦으며 살았던 마을인 ‘신야(莘野)’의 ‘신’ 자이고, ‘항(巷)’은 공자의 제자 ‘안연(顔淵)’이 학문을 연마하면서 살았던 누항(陋巷)의 ‘항’ 자라고 한다. 

과거를 어떻게 살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현재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가 않다. 자신이 한 것도 없고 아무 노력도 안 했는데 무언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사람의 마음일 수 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그걸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여유를 가지고 치유가 있는 시간 속에 미래를 어떻게 그려볼지 생각해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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