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Stamp

금성에서 나주로 그리고 나주역의 1929년 속으로

오른쪽의 위 상단에 903년이라는 타임스탬프가 찍힌 날로 돌아가본다. 여느 남녀가 만날 때처럼 하늘에 상서스러운 오색구름이 뭉게뭉게 자리하고 있고 그 아래 마침 목마른 남자를 위한 우물이 준비가 되어 있다. 당연한 것처럼 그곳에는 아리따운 여자가 빨래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는 나주 오 씨 집안의 처자였다. 그녀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바가지에 물을 떠서 버드나무 잎을 띄워 주었다. 왜 잎을 띄웠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듯하다. 설마 그 잎을 먹으라고 주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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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우물을 찾아서 전라남도의 도시인 나주를 찾아가 보았다. 물을 준 여자와 물을 마신 남자는 결혼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녀는 나주 오 씨 호족집안의 딸이었으며 남자는 아래지방에 교두보를 마련하려고 내려왔던 왕건이었다. 왕건은 나주지역의 호족이며 바닷길에 능숙한 해상세력과 힘을 합쳐 후백제를 위아래에서 압박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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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이 이곳에 물을 마시러 오기 전까지 이곳의 지명은 금성이었다. 금성지역은 그 후에 신라의 땅을 디사 찾았다는 의미를 담아 나주라는 지명으로 바꾸었다. 이 길은 나주지역의 중심지 었던 옛 나주역으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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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의 길목에는 벽화등이 그려져 있다. 벽화를 그리는 사람들의 다양한 의도가 있는 작품들이 있는데 벽화를 통해 용비어천가처럼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도 좋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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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보호수와 고즈넉한 풍광의 마을 뒤로는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 단지들도 눈에 뜨인다. 이곳이 옛 나주역의 주변이었다는 사실도 제법 특이한 사실이다. 남녀의 만남이 항상 새로운 길을 만들기도 하듯이 왕건과 나주 오 씨의 만남은 고려 건국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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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호국보훈의 달이어서 이곳을 찾아가는 여정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옛 나주역은 일제강점기 3대 항일운동으로 꼽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의 도화선이 된 나주학생독립운동이 일어났던 역사적인 곳이다. 나주라는 도시의 이름은 고려시대 이후로 1,000년을 훌쩍 넘는 시간의 힘을 가직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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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옛 나주역이다. 오래된 근대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느낌의 역이다. 이곳에서는 수많은 학생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오갔다고 한다. 1913년 7월 1일 호남선 개통에 따라 신축한 근대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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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라면 지금도 일본인들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어떠했을까. 미스터 선샤인에서도 나왔듯이 일본인이 한국여성을 건드리는 것을 보면 왠지 피가 솟아오를 나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솟아오름을 느낄 때가 있다. 1929년 11월 3일 통학을 하는 여학생을 일본인 학생이 시비를 걸었고 이 다툼이 계기가 되어 전국적인 학생독립운동으로 확산되어 154개교 54,000여 명의 학생이 참여한 독립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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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곳에는 항일독립운동 정신을 기념하는 기념비에 학생의 모습을 상징하는 조형물이 자리하고 있다. 태극기 축제의 장인 나주시 죽림동은 지난 2018년 8월 국토교통부가 주관한 도시재생뉴딜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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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타임스탬프는 두 곳을 찍어보았다. 아주 먼 과거로 돌아가서 이 지역이 나주라는 이름의 지명으로 불리기 시작한 때의 이야기와 약 100여 년 전의 학생들의 독립운동이 일어났을 때로 말이다. 공통점을 보면 남녀 간의 이야기에서 비롯이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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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 지정된 지금의 나주역사(羅州驛舍. 도 기념물 183호)도 당시 자료사진과 관계자의 증언 등을 토대로 옛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다. 봄이 오는 것보다 더 빨리 오는 것은 마음의 변화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를 향한 민족 저항운동의 상징이었던 봄처녀 제 오시고 있다. 나주를 읽고 나면 마음에 고요한 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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