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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May 30. 2017

옛날에 내가 죽은 집

집이 가진 의미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여러 권 읽어보면 제목에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을 함축해서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목에 살짝 숨겨놓은 함정에 빠지면 저자가 의도하는 대로 끌려가게(?) 된다. 옛날에 내가 죽은 집아라는 소설을 처음 접했을 때 뻔하디 뻔한 식스센스(브루스 윌리스 주연 영화) 스타일의 반전을 숨겨놓은 것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책 표지에서 느껴지듯이 음산한 느낌이 드는 제목과 디자인이 마치 호러소설을 만나야 하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게 만든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그런 스타일의 소설을 쓴 적이 없기에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첫 장을 넘겨보았다. 


7년 전까지 사귀다가 좋은 남자(?)를 만나 결혼한다고 통보한 여자에게 갑작스럽게 연락이 온다. 헤어질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는 연애의 법칙상 다시 만나 잘될 경우는 거의 없다. 자신을 속이고 살아가면 모르더라도 말이다. 이 둘은 서로 너무 비슷한 성향을 가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부모는 자식을 보호하고 양육하기도 하지만 자식의 가능성을 망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존재이기도 하다. 


"학대하는 엄마의 흔한 경향 중 하나가 육아서에 맹목적으로 의지하는 현상인 듯했다. 책에 나온 내용은 고작해야 하나의 표준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육아도 그대로 진행시켜야 한다고 굳게 믿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프로그램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아이는 예상치도 못한 난제를 잇달아 던진다.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는 사이. 엄마 내면에서 공격 감정이 생겨나 억제할 수 없게 되면 결국 학대가 시작된다고 한다." p 128


사야카의 갑작스러운 연락으로 외딴집으로 동행하게 된 나카노는 그녀에게서 무엇을 원한 것일까. 아무것도 바란 것이 없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모호하지만 옛 연인의 의리일지도 모르는 여정을 떠난다. 그녀에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런 과거의 아픔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외면한 채 살다 자신의 딸을 학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자신을 찾지 못했기에 그녀는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누군가 살았을 것 같지만 수도, 전기시설이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은 그런 외딴집에서 남자아이의 일기장과 편지를 통해 조금씩 과거의 수수께끼를 풀어 나간다. 어떻게 사야카와 연결이 되어 있는지 모르지만 조금씩 실마리가 풀려 나가며 왜 그런 비극이 발생했는지 알게 된다. 


"엽서에는 그녀가 이혼했다는 소식, 아이는 헤어진 남편이 맡아 키운다는 소식이 지극히 간결하게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였다." - 에필로그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죽음이나 살인이 등장하더라도 비극적인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 속에 인간의 삶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 그리고 보살핌을 한다는 이유로 힘도 없는 아이를 학대하기도 하고 그 가능성을 죽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곳은 지극히 사적이며 폐쇄적인 공간인 집이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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