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의 시간 동안 더 많이 가고 걷고 방문해 본 객주
거리의 기준점을 지구의 적도를 기준으로 했을 때 대략 40,075km가 된다. 고대 그리스학자이며 수학자였던 에라토스테네스는 기원전 3세기경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알아내고 이를 바탕으로 지구 둘레를 계산했는데 당시 계산에 따른 거리는 약 40,000km로 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행성의 거리는 세계일주라는 상상력을 키우게끔 만들었다. 처음 청송에 자리한 객주문학관을 방문한 것이 2018년 봄바람이 불 때였다. 그때 방문하고 나서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동안 필자에게도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 더 많은 곳을 다녔으며 객주를 쓴 작가처럼 전국의 시장을 방문했다. 거리로만 친다면 지구를 다섯 번쯤 돌아볼 수 있는 거리를 돌아왔다.
객주는 조선팔도를 어우르는 유장한 보부상 길을 다니며 그 험난하고 고단한 행로와 함께 저잣거리의 희로애락을 속속들이 재현한 걸작으로 꼽고 있다. 꼭 객주의 작가와 같은 행보를 한 것은 아니지만 전통시장과 뒷골목 답사와 도시의 변화를 보면서 다사다난한 여행을 돌아 다시 이곳에 왔다.
필자 역시 발품 팔아 글을 쓰고 있다. 크고 작은 수많은 역과 지금은 사라져 버린 전통시장을 비롯하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왔다. 글을 쓰는 방식이 작가와 다를 뿐이지만 다른 의미로 풀어내기도 하였으며 거리로만 본다면 객주의 작가보다 더 먼 길을 다녀왔다.
작가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다. 예민한 감각, 어떤 환경 속에서도 계속 이어갈 수 있는 인내심, 그 과정 속에서 번뇌와 증오, 혹은 분노, 좌절까지도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고 이겨내야 한다.
길 위에서 자고 글을 쓰다가 자고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시험하면서 살아가야 하지만 그렇기에 쓸 것들이 생겨난다. 자신의 경험한 것에 대한 다른 모습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객주는 현대시대가 아니라 조선시대의 이야기다. 잠자리는 낯선 사람끼리 어울리는 주막의 봉놋방에서 새우잠으로 때웠으며 그것도 여의치 못할 경우 새옹으로 지은 밥과 푸새 김치로 끼니를 채우며 다니기도 했다.
장사의 신이라는 드라마는 2015년에 객주를 바탕으로 쓰인 것이기도 했다. 폐문한 천가객주의 후계자 천봉삼이 시장의 여리꾼으로 시작해서 상단의 행수·대객주, 마침내 거상이 되는 성공 스토리를 담고 있다.
청송의 객주문학관에는 당시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물건들이 놓여 있다. 우리네 삶이 어떠했든 간에 민초의 삶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사실에 입각해서 기술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속속들이 그 내면을 아는 것이 쉽지가 않고 우리네 인생은 그렇게 밋밋하게 흘러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어떤 방법으로든 무게를 재려고 있다. 옛날 무게를 쟀던 것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한 문장에 적지 않은 애착과 고민이 담긴다. 쉽게 쉽게 쓰는 글도 있지만 이것만큼은 무언가를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미셀 드 몬테뉴는 운이 가치보다 앞서 가는 것, 종종 상당히 앞서 가는 것을 누차 보았다고 한다. 영광이라는 함정 그리고 명성과 평온은 결코 친구가 될 수가 없다.
80일간의 세계일주도 좋아했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어느 정도 거리가 되는지 알고 있지만 아직 한 번도 쉬지 않고 지구를 돌아보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6년 동안 지구를 5번 정도를 돌아볼 만큼 먼 거리를 돌아서 다시 이곳 객주문학관을 방문했다. 쌓인 에너지와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발걸음을 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