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을 노래했던 사람들의 공간 남해 유배문학관
살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은 직간접적으로 만나게 된다. 직접적으로 보는 사람도 있지만 각종 미디어나 역사 속에서 여러 사람을 볼 수가 있다. 사람의 진가를 보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보면 된다. 하나는 큰 성공을 했을 때의 됨됨이와 시련을 겪었을 때 어떤 식으로 벗어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된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은 큰 성공이 있어도 자신을 잘 다스리고 시련을 겪었을 때는 그 속에서도 길을 만들어낸다.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모습이다.
남해군은 2010년 유배지에서 문학 작품을 완성한 대표적 인물 김만중과의 인연, 지역에 김구, 이이명 등 유배인이 특히 많이 배출됐음을 알리는 남해유배문학관을 건립했다. 주제별 전시관과 체험장을 통해 유배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돕고 있으며 다른 국가의 유배를 경험한 인물에 대한 전시도 볼 수가 있다.
대부분의 유배지는 섬에 자리하고 있다. 제주를 비롯하여 섬이 유배의 땅이 된 것은 중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인 데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절도안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속도괴 비천한 글씨쟁이를 뛰어넘으려면 모든 것에 통달하여 지혜가 밝고 정직하며, 널리 배워 학문을 갖춰야 된다고 하였다.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유배를 주제로 한 유배문학관이지만 남해라는 지역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창선. 삼천포대교가 개통되기 이전까지 남해의 관문은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고 불렸던 남해대교였다. 고려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무수한 유배객들이 자신의 적소로 건너오기 위해 나룻배를 타고 건너간 노량해협을 연결해 주는 것이 남해대교다.
이곳에는 이순신과 관련된 다양한 기록들이 있다. 일기 중에서 가장 많은 유명세를 지니고 있는 것은 난중일기가 아닐까. 안네의 일기 같은 작품들도 있지만 전장에서 하루를 허투루 살지 않았던 이순신의 진솔한 기록이 담겨 있는 것이 바로 난중일기다.
남해의 민속주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죽방렴 멸치잡이다. 대나무발을 엮어 만든 어업도구로 대나무 어사리라고 불리는 죽방렴 멸치잡이는 죽방멸치로 불리며 최상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남해라는 지역은 너무 아름답고 풍광이 좋은 곳이다. 그렇지만 스스로 움직인 것이 아니라 유배 등에 의해 강제로 옮겨지게 되면 여름은 유달리 덥고 겨울은 외롭고 고독하였을 것이다. 긴 해에 긴 밤을 보내야 하는 섬이 사람보다 먼저 잠을 청하고 주변은 적막하기만 하다. 강원도에서 군대생활을 할 때는 그곳이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제대를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찾아가 보니 그토록 아름다운 곳이 없었던 것을 다시 볼 때가 있다.
안령에서 바람을 기다리며 - 일두 정여창
바람을 기다리나 바람은 이르지 않고
뜬 구름이 푸른 하늘을 가리고 있네
어느 날에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구름 쓸어버리고 다시 하늘 보게 될까.
지금도 형법에 의해 죄를 지은사람들은 형벌을 받게 된다. 과거에도 체계가 있었으나 여러 단계를 거쳐서 사형이라는 가장 무거운 형벌까지 받게 되었다. 가장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이 받는 죄인 사형은 참수형, 효수, 사약, 삼족멸, 구족멸, 능지처참 등 여섯 가지가 있다.
유배를 받은 사람 중에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사람 중에 다산 정약용이 있었다. 18년간의 유배생활을 잘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몸을 깨끗이 하고 부정한 일을 멀리 하였기 때문이다. 다산이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 밑바탕에는 초당의 문턱이 낮았던 데에도 원인이 있다고 한다. 그는 하층 민중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였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유배를 통해 새로운 작품과 길을 만들기도 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문학가 도스토옙스키는 미하일 페트라세프스키가 주도하는 사회주의 모임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1849년 체포되어 사형 판결을 받았다. 다행히 황제의 특명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 옴스크에서 1854년까지 유배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는 거기에서 죄수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 속에서 성경만 읽을 수 있었고 글을 쓸 수 있는 자유도 없었다. 그의 유배문학은 페테르부르크로 귀환한 후에야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그때 쓴 작품이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등이 있다.
시련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을 준다. 당파 싸움이 치열했던 15~16세기는 관직에 있던 사람들 4명 가운데에 1명꼴로 유배를 갔을 정도로 빈번했었다. 순간순간 날마다 새로운 향기를 피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소가 끄는 달구지를 타고 유배지까지 가는 여정이 매우 고달팠겠지만 남해에 이르러서 한양과 다른 풍광을 보고 다른 방법을 찾고 문학의 길을 걸을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