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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Jun 25. 2024

6.25 74주년 영화

학도병들의 전투가 벌어졌던 경북 영덕군의 장사리  

영덕이라는 곳에 대게를 먹으러 가거나 여행차 가본 사람은 있어도 그곳에 장사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영덕군의 장사리라는 지역은 좁게 형성된 행정구역을 가지고 있다. 장사리 혹은 장사동이라고 불렸던 곳은 북한군이 막고 있었던 낙동강 전선을 돌파하기 위해 필요했던 요지였지만 무엇보다도 인천상륙작전을 하루 앞두고 벌어진 양동작전 혹은 주의 분산을 위한 중요한 전투였었다. 

포항에서 7번 국도를 따라 20여 km를 올라가면 영덕군 남정면 장사해수욕장 앞바다에 커다란 배 한 척이 정박해 있는 것이 보인다. 배의 옆면에 ‘작전명 174호… 잊힌 영웅들!’이란 커다란 구호와 함께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관’이 흰색으로 쓰여있다.

학도병 및 이들을 지위하는 육군 장교들로 구성된 총 772명의 독립 제1유격대대가 LST 문산호를 타고 장사리 해안에 상륙하여 국도 제7호선을 봉쇄하고 조선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데 성공하고 철수한 작전으로 주력이 학도병이었다. 

LST 문산호는 장사리 해안에 상육할 때 철수할 예정이었으나 태풍 케이자로 인해 좌초되면서 모든 작전 계획은 뒤틀어졌다. 그렇게 사라져 버린 문산호는 1997년 3월 6일 해안을 수색하던 해병대 1사단 대원들이 바닷속 갯벌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당시 작전을 수행했던 군인들과 학도병들 중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39명이 마지막 철수 과정을 엄호하였지만 그들의 생사는 알 수가 없다. 영덕의 바다는 아름답지만 이 바다에는 치열한 옛 기억이 남아 있다. 

다음날에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한 뒤, 9월 19일에 유엔군 정찰기에 포착되었고, 해안선을 따라 항행하던 미국 제7함대 태스크 포스 77 소속 USS 헬레나 CA-75가 이끄는 포격임무대(bombardment Task Force)의 엄호를 받으며 남은 부대원들은 LST 조치원호를 타고 철수하였다.

가장 큰 작전은 기억되지만 실패하던가 소규모의 기만작전은 잊히기 마련이다. 이들의 전투는 2019년에 개봉한 영화 장사리:잊혀진 영웅들로 다시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공원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커다란 고등학생 모자 조형물. 모자 앞에 ‘高’ 자가 선명하며 ‘독립 제1 유격 대대’는 이명흠 대위가 직접 대구역 광장 등에서 모병해 ‘명부대’란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이명흠 대위를 포함해 ‘명작전’에 참가한 누구도 이 작전이 인천상륙작전을 위한 연막작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고 알려져 있다. 

74주년을 맞이한 6·25 전쟁은 개전 초부터 많은 전사자가 발생해 병력 보충이 시급한 과제였다. 학도병들은 낙동강 방어선 전투 당시 다부동 기계·안강, 영천, 포항 등에 총 30여만 명이 참가했다. 지금은 다른 의미처럼 받아들여지지만 카투사는 미 지상군의 병력보충을 위해 카투사(KATUSA·Korea Augmentation to the US Army) 제도를 1950년부터 시행하였다. 미군의 전투력 손실을 보충하는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문산호는 바다 위에 있는 전국의 유일무이한 호국 전시관으로 2016년도에 개관 예정이었으나 그 해 두 차례 거대한 태풍으로 선미부 손상을 비롯한 하자 16건이 발생했었다. 장사리 전투 영화가 개봉할 때 맞춰 겨우 개관한 장사리 전승기념관은 대중들에게는 잊혔지만 다시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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