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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독립운동가

청주에서 만나는 여성 독립운동가와 그녀들의 삶

나라를 빼앗기게 되면 대다수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일부 부역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부와 기회가 따라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다수의 국민들의 삶은 팍팍해지며 핍박을 받게 된다. 원나라, 청나라, 일제강점기에 한반도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 특히 약자들의 삶은 더욱더 힘들었다. 여성의 인권이 더욱 취약했을 그런 시기에 여성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했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여성들의 삶을 보기 위해 청주 충북미래여성플라자의 충북여성독립운동가의 공간을 방문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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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시 상당구 지북동 현 여성발전센터 연접 부지에 신축한 미래여성플라자는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2575㎡ 규모로 신축한 것이 201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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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과 뮤지컬 등 공연을 할 수 있는 문화이벤트홀(150석)과 영상미디어실(66석), 여성단체 사무실, 요리 교육장과 요가 등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는 220㎡ 규모 다목적실을 갖춘 1층 공간에 대한민국 100년의 뿌리 나라를 위해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충북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도록 공간을 조성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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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는 매년 8월이 되면 그달의 독립운동가를 뽑아서 발표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일제가 간도로 이송하던 15만 원을 빼앗은 사건의 주역인 독립유공자, 윤준희(1963년 독립장), 임국정(1963년 독립장), 한상호(1963년 독립장), 김강(1995년 독립장) 선생을 뽑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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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에 뽑힌 8월의 독립운동가로 곽낙원, 임수명, 이은숙, 허은선생이 있는데 이곳에는 삯바느질을 하며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한 이은숙선생과 가사를 책임지며 독립운동의 기반을 지킨 허은선생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은숙선생(1889~1979)은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 허은선생(1909~1997)은 2018년 건국훈장 애족장에 추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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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미스터 선샤인의 실제 모델이 되었던 사람이나 조선의용대의 부녀복무단정으로 활약한 박차정, 한국광복군 제3 지대 소속 여성대원으로 활약한 지복영, 한국광복군 제3 지대 소속 여성대원으로 활약한 오광심 등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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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숙은 남편인 이회영이 서간도로 망명하여 신흥무관학교 설립 등 독립운동에 전념할 때 옆에서 가정살림을 책임졌으며 1925년 생활고로 인해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는 공장에 다니거나 삯바느질을 하여 번 돈을 남편에게 부쳐 독립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매일 빨래하고 만져서 주야로 옷을 지어도 한 달 수입이란 겨우 20원가량 되니, 그도 받으면 그 시로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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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은은 이상룡의 손자 이병화와 1922년 만주에서 결혼한 후 1932년 이상룡의 서거로 안동 임청각에 귀향할 때까지 가정살림을 책임졌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의 식사를 조달하고 서로군정서 대원들의 군복을 만들어 보급하는 활동을 하였다.


"남자들은 전부 독립활동을 하느라고 바깥일에 전념하니까 나무 하나 해다 주는 사람이 없었다. 어른들은 농사일을 모르고 남편은 없으니 어떻게든 혼자 노력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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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힘든 삶이 따라오고 옥고를 치루기도 한다. 외세 침략과 국권 강탈로 이어지는 위기 속에서 여성들 역시 안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남편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독립운동자금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항일단체를 만들고 무장항일투쟁에 직접 뛰어들기도 하였으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누구든지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차별을 받지 않는 것처럼 자신의 역할을 하기 위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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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조국 독립과 주권을 쟁취하기 위한 흐름과 함께 여성 개인의 삶도 살펴볼 수가 있다. 여성 의병을 이끌어내며 3.1 만세운동을 주도하고 임시정부 지원과 여성운동에 매진하며 무장투쟁의 최일선에 섰으며 노동현장과 학교에서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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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이 없다는 것은 사람답게 살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독립할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의 길을 개척하기란 쉽지가 않다. 조선후반기 왜곡된 성별에 대한 차별에서 급작스럽게 변화하는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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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분들의 사진을 보면 현재의 가족과는 다른 삶이었다는 것을 보게 된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주권이 빼앗겼던 시대의 가족과 주권이 있는 현재의 가족의 가치관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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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은 대국민 전시주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여성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순회전시를 개최하고 있다.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는 남녀의 차이가 없듯이 무기를 들고 일본군과 직접 맞서 싸우기도 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동하거나 여성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성별에 제약을 받지 않듯이 의무 역시 성별로 구분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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