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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웨딩

결혼식에 가는 것도 오는 것도 그렇게 의미 없어진다.

비교로 인해 스스로의 자격지심이 더욱더 낮아지고 있는 이 시대에 결혼식은 더욱더 의미 없어져가고 있지만 결혼을 하는 사람들은 결혼과 관련된 종사자들에게 흡혈을 당하고 있다. 과거 결혼식과 관련한 아르바이트를 1년 6개월 한 경험으로 볼 때 요즘의 결혼식은 미친 느낌이다. 스드메를 비롯하여 일명 플래너라고 하는 사람들과 결혼식장, 각종 예물등과 연관된 거품이 대단하다. 필자가 일할 때에는 결혼식의 비용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그냥 행사를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것만 하고 굳이 덤터기를 씌우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물론 그때에도 서울의 대형호텔등에서 결혼식을 하는 아주 일부의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건 그들만의 문화이지 대중적이지는 않았다.


결혼하는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지만 예식장은 그보다 더 많이 줄었다. 자연스럽게 비용이 올라가지만 여기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덤터기를 씌우면서 평생에 단 한번 결혼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평생의 단 한번 결혼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될까. 굳이 결혼식을 그 많은 비용을 들여서 할 필요가 있을까. 필자의 경우 지인들의 자식들이 결혼을 하게 된다면 그곳에 가지 않을 생각이다. 굳이 돈을 쓸 필요도 없고 반대로 그렇게 할 생각도 없다. 쓸데없는 비용이 이제는 축의금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그들 자식들과 볼일도 없는데 단지 지인과의 관계로 참석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잘은 모르겠다. 어차피 뿌리지 않으면 거두어들이려고 발버둥 칠 필요도 없다. 만날 사람들이면 그것과 상관없이 만날 것이고 만나지 않을 사람이라면 열심히 참석해도 인연이 이어지지 않는다. 합리적인 선택이 아니라 자신과 자신의 자식들이 얼마나 잘 결혼하는지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결혼식에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결혼해서 잘 살던 못살든 간에 그것이 무슨 큰 의미를 가지고 있겠는가. 어차피 도와줄 수 있는 것이나 도움을 받을만한 것도 살다 보면 많지가 않다.


세상의 이치가 그러하다. 자신이 잘 살고 있지 못하면 어차피 부부나 가족을 제외하고 도움의 손길은 끊기게 된다. 자신이 어려울 것을 대비해서 아무리 열심히 돌아다녀본들 그 위치에 서게 되면 외면을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법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 노력을 하면 상황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외할아버지도 그렇게 돈을 빌려주고 정을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떼이고 가난하게 사시다가 그 여파는 어머니에게까지 미쳤다.


결혼식이 지금처럼 과시가 아니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바뀌어할 필요성이 있다. 한 번 입는 웨딩드레스나 턱시도 그날의 행사가 지금은 더없이 거추장스러워지고 과시 외에 어떤 장점도 없어지는 느낌이다. 사회분위기가 이렇게 왜곡이 되어가고 있는데 언론들은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고만 있다. 그들에게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된다는 심리로 비교문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연예인들이 결혼하고 어떤 비용을 치렀고 빌딩을 구입한 것이 무슨 의미라고 계속 퍼다 나르는지 모르겠다. 그들에게는 양심이라는 것보다는 그냥 사람들이 많이 클릭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만 남아 있다.


결혼식을 저렴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은 있다. 그렇지만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하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으며 상부상조처럼 쓴 돈을 받을 생각을 안 하면 된다. 결혼에 대한 허례허식이 정점에 달해가고 있는 요즘 남자와 여자가 만나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합리적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도 다른 사람보다 더 잘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모든 것은 적당한 것이 좋다.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어차피 나이 들어 돈이 없으면 친구들은 떨어져 나가게 되어 있다. 가끔씩 만날 수는 있어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적인 경제 수준이 유지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한 번의 화려한 결혼식이 인생에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보다는 미래설계가 더 명확해지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결혼을 하는 것도 아이를 낳는 것도 평균으로 해야 한다는 그 생각이 모든 것을 어려워지고 시도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그 평균자체가 너무나 왜곡이 되어 있기 때문에 평균을 말하는 자체가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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