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는 누군가 May 08. 2017

찻사발에 담긴 희망

문경 전통 찻사발 축제 

그릇이나 잔, 사발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 만들어진다. 용도에 따라서 다르지만 찻잔, 밥그릇, 국그릇, 맥주잔, 막걸리 사발 등으로 익숙하게 들어본 이름들이다. 접시는 모양을 만들던가 무언가를 위에 놓기 위한 것이지만 잔, 그릇, 사발은 무언가를 담는다. 즉 형태가 모양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형상의 물질이다. 사람 역시 겉으로 보면 그 생김새가 정해져 있지만 그 본질을 보면 사람 역시 그릇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만들어진 잔과 다른 것은 노력이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이다. 지난주 문경시의 대표축제인 전통 찻사발축제가 25만 명의 관광객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문경새재는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가본 사람이 없을 만큼 문경새재의 매력적인 경관이 사람을 끌어들인다. 문경새재를 이번에 지인과 함께 동행했는데 축제장이 아닌 위쪽으로 더 올라가면 그 풍광이 너무나 좋아 몸이 피곤한 것도 모르게 만들 정도의 힐링 View를 보여주는 곳이라고 극찬을 하기도 했다. 

문경새재 과거길은 이곳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이곳이 축제를 하는 공간이자 자신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각자 살아가기 위해서 자신 내면의 불꽃이 사그라들지 않도록 노력한다. 누구나 내면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데 그 불꽃이 사라지면 살아가는 동력을 잃게 된다. 내면의 불꽃은 영혼을 살찌우고 삶을 풍족하게 만든다. 분명히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런 순간들이 있다. 좋은 경관을 보면서 감동의 불꽃을 느낄 때가 있고 좋은 사람을 만날 때도 그런 불꽃을 느낄 때가 있다. 필자가 문경을 찾아간 이유는 환한 불꽃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인체의 구성요소를 보면 별 것 없지만 영혼이 담긴 육체는 소우주 그 자체이다. 사발 역시 소우주라고 부르는데 우주를 담을 수 있는 철학과 사유가 서린 선의 결정체인 사발은 사람과 무척 닮아 있다. 내면에 무엇인가가 우리를 받치고 있는데 이는 사발의 굽처럼 삼라만상을 받치고 있는 축과 유사하다. 

입구에서 만난 한 다례 체험장은 팔극과 한민족의 기운을 상징하는 다례법을 시도했다면서 반갑게 차를 따라주었다. 필자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신을 진짜 사랑했던 적은 없었다. 사랑한다고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래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몇 년 전부터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문경을 만났다. 

전통 찻사발축제가 열리는 공간은 문경새재의 드라마 세트장으로 잘 관리된 덕분에 주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 곳을 찾아온다. 축제의 특별행사에서는 사기장이 들려주는 찻사발 이야기, 문경 전통 발물레 경진대회, 찻사발 깜짝 경매, 아름다운 첫자리 한마당, 전국 가루차 투 다대회, 관객과 함께하는 한. 중. 일 다례시연, 전국 차회 다례시연 등이 열렸다. 

수많은 사기장들이 축제장 공간과 건물에 사기장들이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하고 다례체험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놓아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찻사발은 말 그대로 차를 마시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처음에는 제각기 생김새가 다른 잔에 차를 마시는 이유가 있지만 나중에는 그냥 좋아서 차를 마신다. 차가 있으니까 마시는 것이다. 매번 새로운 삶을 꿈꾼다. 지금과 다른 삶, 어쩌면 더 나은 아니 더 재미있는 삶을 생각하면서 살아간다. 찻잔의 진한 색이 강렬한 삶의 욕망을 일으키게 한다. 

찻사발을 이렇게 많이 본 것도 정말 오래간만인 듯하다. 축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다양한 색깔과 질감의 찻잔을 만나는 것은 어려웠을 것이다. 진한 남색의 찻잔에서 따르지도 않았을 차의 향기가 묻어나는 듯하다. 

모두 복원된 것은 아니지만 2000년대 중반에 문경새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문경으로 보낸 40여 장의 사진을 토대로 주흘관 성관 및 원형 축조 공사를 통해 주변에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원형 그대로 복원된 축제장 입구의 주흘관을 비롯하여 문경의 과거 모습을 다시 보는 즐거움이 있다. 

문경새재에 과거를 보러 온 사람들의 머물렀을 공간도 있고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살던 곳의 이야기를 나누던 주막이 있었을 것이다. 문경새재는 한국에서 잘 알려진 대표적인 고갯길로 영남과 기호 지방을 연결하는 대표적인 옛길이었다. 선비들이 축세를 위한 장원급제를 꿈꾸며 한양을 오가며 이곳을 지나갔다. 어떤 사람들은 축제장의 먹거리를 만날 수 있는 이런 주막에 돌아오는 것인지, 사라지는 것인지, 떠나려는 것인지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즐거웠을 것이다. 

찻사발의 크기도 제각각이고 질감이나 문양도 모두 다르다. 사람은 똑같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우연하게 누군가를 만나면 그런 실수를 하는 사람이 있다. 비슷한 사람 혹은 똑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말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나 비슷해 보이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찻사발이 그렇듯이...

어떤 축제장을 가보면 쉴 곳이 하나도 없고 예스러운 것이나 특징이 없어서 대체 무엇 때문에 축제를 하는 것인지 모를 때가 있다. 그렇지만 문경의 축제는 색이 있다. 쉼이 있다. 쉬어감이 있기에 여행이 즐거워진다. 그래서 문경새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문경에는 찻사발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용도의 그릇이나 쟁반도 만들어서 팔고 있다. 집에 두기만 해도 멋스러운 그런 디자인의 제품들이 넘쳐난다. 평소에는 그런 느낌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이날만큼은 주머니가 가벼운 것이 아쉬운 순간이 수없이 지나쳐 간다. 

올해의 문경 전통 찻사발축제에는 어린이 사기장 전도 열리고 있었는데 제법 솜씨가 그럴듯하다. 사진 속의 아이들은 앳되어 보이지만 솜씨만큼은 예사롭지가 않다. 예리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어도 투박한 가운데 동심만이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작품의 매력이 있다. 

한국만의 다도 문화는 어떠한 색을 가지고 있을까. 외국인이 보기에 한국의 다도문화는 신비하면서도 고요한 가운데 멋스러운 매력이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차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다산(茶山) 정약용이다. 정약용과 초의선사로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차(茶) 역사의 맥은 전국으로 퍼져나갔고 지금은 외국인에게 한국차의 매력을 전하고 있다. 특히 문경의 축제에는 많은 외국인이 방문하여 그 매력에 흠뻑 빠졌던 것으로 전해진다. 

곡우에서 입하 기간 중 오전 찻잎을 따 푸른빛이 사그라질 때까지 덖은 후 손으로 비벼(시루에 쪄서 비비기도 함) 온돌에 한지를 깔고 한 시간 가량 말려 옹기에 저장하는 제 다기 법(製茶技法)을 사용했다는 백운 옥판 차를 마셔본 적이 있는데 이날은 중국의 전통 보이차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외국인과 함께 마신 차 한잔은 향긋하면서 진했다. 특한 향과 색을 지니고 있는 보이차는 약용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보통 구입할 수 있는 보이차는 중국 윈난 성에서 생산된 찻잎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축제장을 가기 전에 있는 문경의 특산품을 판매하는 공간에서는 각종 차와 먹거리가 있었다. 그곳에서 마신 차 중에 예민한 '온도감지 센서'를 꽃눈에 가지고 있다는 생강나무 꽃차는 향긋하고 목 넘김이 좋았다. 생강나무의 한해살이는 노란 찻물을 우려내는 노란 꽃으로 생명을 시작하여 노란 단풍으로 마감한다. 

여행에서 먹거리를 뺄 수는 없다. 치열한 인생을 잘 살아낸 사람들은 축제장에 와서 무사히 살아남은 순간을 먹거리와 함께 축복한다. 숯에 굽는 석쇠구이 고기는 최상의 상품은 아니지만 이런 주막에는 어울리는 먹거리가 된다. 


필자는 문경의 찻사발축제에서 다양한 찻사발들을 보면서 내면의 그릇을 어떻게 만들어갈까 어떤 색깔이 좋을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해보게 된 것 같다. 


필자가 이곳에 문경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문경을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해 게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