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공주문화관광재단 기획초대전 레플리카전 구스타프 클림트
자신이 가능성이 있다는 길을 걸으며 좋아하는 것을 담으면서 그 실행의 결과들을 과정과 함께 남겨놓다 보면 자신이 목적하는 바에 도달하게 된다. 개개인이 할 수 있는 시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결과물을 내놓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와 노력의 기반에 재능이라는 조미료가 더해져야 한다. 세상에 가장 가치 있는 발견은 스스로에게 부여된 재능의 발견이다.
시대를 막론하고 사랑을 받아왔던 화가들이 있다. 그중에 상징주의와 아르누보 스타일의 대표적인 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자신의 작품을 그리기까지 수많은 드로잉을 했으며 소묘라기보다는 스케치에 가까운 느낌이다. 모든 그림의 시작은 스케치가 기본이다. 화금빛 색채의 마술을 담았다는 구스타프 클림트는 그림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대중적인 화가이기도 하다.
집에도 구스타프 그림이 4~5점이 있는데 그 그림은 모두 공주문화관광재단에서 열린 구스타프 클림트 레플리카 초대전에서 볼 수가 있었다. 전시는 아트센터 고마 1, 2 전시실에서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료 관람으로 진행되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스케치 작업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 과정이며 소묘만을 하는 화가들도 적지가 않다. 구스타프 클림트 역시 수많은 드로잉을 남겼다. 클림트의 작품은 인체 세부에 대한 철저한 이해, 종이에 정확하게 옮겨내는 감각, 육체적 특징과 옷의 질감 및 패턴을 묘사해 내는 다양한 선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것은 작품이 되기도 하고 드로잉 상태에서 머무르기도 한다. 클림트는 영감을 자극하기 위해 즐겁게 드로잉을 했으며 작품들을 통해 창작에 임했던 작가의 통찰력을 엿볼 수가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1876년에 빈에 자리한 응용미술학교에 입학 후에 역사주의와 장식미학에 기초한 교육을 받았다.
화가나 작가들에게는 어떤 전환점이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에게는 1892년 클림트의 아버지와 동생의 사망이 그 기점이 되었으며 죽음과 삶에 대한 고찰을 하게 되고 이 변화는 클림트를 상징주의 화가로 이끌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오스트리아 정부에서 주문받은 빈 대학교 대강당의 천장화를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드러내며 혼란스러운 자연의 힘이 지배하는 장엄한 우주의 모습을 창조해 냈다.
자신의 길을 걸어가게 되다 보면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1903년, 이탈리아 라벤타, 산 비탈레 성당의 화려한 황금빛 비잔틴 프레스코와 모자이크에 매료된 클림트는 그의 작품에 이런 모티브를 적극적으로 반영시켰다고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들은 금색이나 은색이 화려하게 얽힌 패턴과 다양한 색채, 기하학적인 장식요소, 강렬한 상징주의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갔다. 클림트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여성이다. 여인들은 직업모델부터 고위층 여성까지 다양했다.
관능적인 여성의 모습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의 표현력은 에로티시즘을 아름답고 신비하게 표현하면서 자신만의 색채를 확산해 나갔다. 클림트의 그림 중에 풍경화는 전 생애에 걸쳐 40여 점이라고 한다. 대부분은 1900년에서 1916년까지 플뢰게 자매들과 여름을 보낸 오스트리아 북부아터 호숫가를 주제로 하고 있다.
많은 것을 보고 진화시키면서 자신의 스타일로 흡수하는 과정은 모든 화가들이 경험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클림트에게 풍경화는 마음껏 자신의 양식을 실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장이었으며 작업에서 익힌 자연의 색채와 형태는 훗날 화려한 양식을 구축하는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황금빛 색채 화가로 알려진 19~20세기를 풍미한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레플리카 작품 62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누구나 친숙하게 즐길 수 있도록 공공성과 대중성을 갖추었다. 길고 긴 수난, 그럼에도 빛바래지 않은 탁월한 재능과 뚝심을 볼 때 너무도 아까운 나이였던 56살에 스페인독감등과의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역사화가에서 상징주의자로’, ‘유토피아의 실현’, ‘최고의 명작이 탄생한 황금시기’, ‘삶과 죽음’, ‘클림트의 풍경’, ‘오리엔탈리즘’, ‘클림트의 드로잉 작품’ 등 7가지 주제로 짜임새 있게 구성된 전시관은 보는 재미가 있다.
클림트의 유명 작품 중 하나인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은 한때 세상에서 가장 비싼 미술 작품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가치가 인정되어야 하는 예술가들의 길은 스스로를 지탱해야만 한다. 때를 만나지 못했을 뿐, 자기가 가는 길이 예술의 진보에 이른다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구스타프 클림트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묵묵히 나아갔으며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것을 알았던 사람이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그림은 다양한 가치를 만들어주며 자신이 발견할 수 있는 색다른 가치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기도 하고 길을 만들게 해 준다. 클림트는 스스로에 강한 확신이 가졌던 사람이다. 자기가 하는 게 늘 옳다고 봤고, 자기가 가는 길이 항상 정답이라고 여겼다. 겉으로는 우아하지만 물 밑에선 부단히 발을 놀리는 백조처럼, 뒤에서는 삶을 갈아 넣으며 자신의 길을 끝까지 걸었으며 그렇게 황금빛 색채는 후대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