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대 갑부였던 허 씨 문중으로 장가간 윤 씨와 부인 허삼둘가옥
지금도 지역명으로 끝에 음(陰)을 붙이는 곳은 거의 없다. 산 사람은 양의 기운이 넘치는 곳에 살아야 하며 죽은 사람이 음의 기운이 있는 곳에 묻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명에 음이 붙었던 곳이 있었다. 지리산자락에 물 맑고 공기 좋은 도시 산청의 옛 이름이 산음(山陰)이라고 불렀던 적이 있었는데 산음현에서 일곱 살의 여자아이가 아기를 낳는 괴이한 일이 영조 43년(1767년)에 일어나자 음기가 너무 세서 그렇다고 해서 산청으로 바뀌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산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옛날에 근 고을이었던 안의라는 곳이 있다. 주변의 산청, 함양, 거창과 더불어 큰 고을이라고 불렀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의 이름도 원래 안음(安陰)이었다가 산음이 산청으로 바뀔 때 이곳도 안의(安義)로 바뀌었다. 이곳에는 꽤나 넓은 대지위에 자리한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보통의 양반가옥과 그 배치형태가 달라서 조금은 독특해서 유의 깊게 살펴보았다. 이름은 허삼둘고택 혹은 허삼둘가옥이라고 불리고 있는데 허삼둘은 여성의 이름이다. 진양갑부 허 씨 문중에 허삼둘이라는 사람이 결혼을 할 때 이 고택을 1918년에 지었다고 한다.
동향한 넓은 터에 북향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T'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바깥행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1984년 12월 24일 국가민속문화재 제207호로 지정되었다.
허삼둘가옥은 중심은 안채로 ‘ㄱ’ 자형이다. 보통의 ‘ㄱ’ 자형이 아니라 꺾인 부분을 귀접이한 형식으로 하였고 구성은 남측엔 정면 3칸, 동측은 정면 4칸으로 되어 있다. 안채가 중심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옛날 양반가옥의 특징이 아니라 실용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라서 과거를 보는 것은 아니고 윤대홍이라는 사람이 허 씨 문중으로 데릴사위처럼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들은 모두 백일홍이다. 비교적 최근에 심어진 나무라서 허삼둘이 심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8월의 무더운 여름에 백일홍은 화사하게 피어 있다. 선비가 공부했던 집처럼은 보이지는 않는다.
허 씨 가문은 얼마나 돈이 많았을까. 시집을 오면서 자신의 입맛대로 이 정도의 집을 지을 수 있을 정도는 상당한 부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대 한옥 건축의 전형을 볼 수가 있다. 안쪽에는 바깥 행랑채, 안행랑채, 대문간채, 곡간채 등도 남아 있다.
상당히 넓은 대지에 가옥이 자리하고 있어서 무더운 여름에도 시원시원한 느낌이다.
당진의 면천이라는 곳에도 연암 박지원이 근무를 했었는데 함양군 안의면에도 근무를 했었다. 그래서 이곳에서 여는 함양연암문화제는 조선조 실학의 대가이자 안의현감을 역임한 연암 박지원 선생을 기념하는 문화축제다.
올해로 제21회를 맞은 함양연암문화제는 오는 23일과 24일 이틀간 진행된다. 행사 1일 차에는 학술대회, 수중공연, 연암 부임행차, 연암 안녕기원제, 개막식, 연암노래자랑 등이 안의면 일원에서 이루어질 예정이라고 한다.
고택이나 가옥에서 여성의 이름을 그대로 딴 사례는 쉽게 볼 수 없는데 함양 안의에서 만나볼 수가 있었다. 이름은 남성적인 허삼둘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취향이 반영된 옛 집에서 무더운 올해의 여름날을 잠시 보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