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 안의면의 박지원이 거닐었을 남강(오리숲)과 빛의 정원
55살이라는 나이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지금도 적은 나이는 아니지만 나이가 든 사람이 많아져서 그런지 젊은 축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이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도 55세에 새 직장을 얻는 것이 힘들진대 하나의 고장을 관리하는 관리자로 간다는 것이 쉬웠을까. 함양군 안의면이라는 곳에서 55세의 나이에 현감으로 가서 5년 동안 살았던 사람이 연암 박지원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글을 잘 썼던 사람이다. 할아버지 박필균은 지돈녕부사까지 지냈지만 아버지는 벼슬을 하지 않았다. 그냥 공부를 좋아했을 뿐이라고 한다. 연암 박지원 역시 글을 잘 썼지만 벼슬길에 큰 관심이 없었다.
세상이 살기 좋아지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아야 했다. 조선 후반기 실학자들은 농민들이 잘 살 수 있도록 토지 제도를 바로잡고, 과학적인 농사 기술을 보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상공업을 장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곳은 치수를 위해 만들어놓은 오리숲이라는 곳이다. 진주로 내려가면 그 유명한 남강이라는 물줄기가 이곳에도 흐른다. 연암 박지원은 공부를 하고 다른 이들보다 능력이 있는 사람의 도리는 가난한 백성을 구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정조는 젊은 학자들을 많이 고용했다. 그중에 연암 박지원도 있었다. 연암 박지원은 55세의 나이에 이곳으로 부임을 하게 된다. 전국을 다니다 보면 열녀와 관련된 전각을 많이 보게 되는데 한 번 인연을 맺으면 다시는 다른 이와 인연을 맺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곳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래로 내려가면 최치원이 만들었다는 상림을 보고 무언가 배우지 않았을까. 박지원이 1793년에 집필할 열녀 함양박씨전은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 한 여인의 뼈저린 고독과 슬픔을 삽화를 곁들여 상세하게 담아 냄으로써 수절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완곡하게 폭로하고, 과부의 개가를 금지시킨 사회제도를 비판했었다.
누구든 행복해질 권리는 있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하던가 그 이익을 누리고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안의에서는 매년 함양 영암문화제가 열린다. 안의면 오리숲 및 시가지 일원에서 연암부임행차, 안전기원제, 연암별빛콘서트, 각종 체험프로그램, 학술대회, 전시회 등을 열게 된다.
함양 연암문화제는 안의현감으로 봉직하면서 애민사상과 실학정신을 구현한 연암 박지원의 애민사상과 실학 정신을 재조명하는 시간이다.
덕유산, 지리산 등 30여 개가 넘는 명산들로 둘러싸인 함양은 ‘빛이 가득한 고장’이란 이름답게 기세가 좋다.
광풍루가 자리한 곳으로 넘어와서 오리숲을 바라본다. 물 위에 비친 오리숲이 마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것과 쓰이는 것들은 다르다. 연암 박지원은 자신이 걷고 싶은 길을 걸었는데 굳이 벼슬길을 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고 글을 쓰며 어디에 연연해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적지 않다. 다른 사람보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무게를 견뎌야 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