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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Sep 06. 2024

부안의 변화

그해 여름에 찾아가 본 부안역사문화관

그해 여름이 되면 어디를 가고 싶어 질까. 농촌이라는 곳이 몇 번 체험하듯이 되는 공간처럼 되어버린 요즘 지역의 문화를 보여주었던 영화들이 간혹 기억이 나곤 한다. 이병헌과 수애의 로맨스 영화였던 그 해 여름에서 일생동한 한 여자를 사랑했으며 항상 마음이 여름이었던 그때를 그리고 있었다. 올해의 부안은 변산 바닷가에서 부안 무빙이 열렸다. 두 남녀의 만남과 이별에 시대의 비극이 어우러지며 감정이 고조되었던 기억이다.

부안이라는 지역은 최근에 문화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부안무빙'은 여타 영화제와는 다른 개념의 문화축제다. 전국의 아름다운 스폿을 찾아 움직이며(moving), 지역별 테마에 맞는 영화(movie)를 지속적으로 만나보는 것은 지역의 문화를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  

부안 역사문화관은 국가등록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된 군청 앞 구 부안금융조합 시설을 리모델링해 조성됐으며 상설 전시실 및 기획전시실, 수장고 등으로 꾸며진 곳이다.

상설 전시실은 과거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부안의 역사와 문화를 사진을 활용한 그래픽 패널과 디지털 액자, 키오스크를 통해 관람할 수 있도록 구성했는데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대규모 간천공사를 했던 계화도 간척사업과 부안군 대항리와 군산시 비응도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 방조제를 축조했던 대규모 국책사업인 새만금 개발사업을 볼 수가 있다.

이 건물을 사용하던 금융조합은 식민지 수탈을 위해 일제가 세운 금융기관이었다. 조합의 공식적인 업무는 농업자금의 대부, 곡식 창고보관, 농업상의 비료 분배 및 대여, 생산물 위탁판매 등은 겉으로 보이는 것이었고 사실 지역 경제를 장악하기 위해 추진하는 정책사업의 말단기관 역할을 하였다.  

이곳이 바로 금고로 사용이 되었던 곳이다. 부안금융조합은 농촌 금융지원이라는 미명 아래 간척과 관개사업에 대출을 해주었다. 늘어난 수확은 결국 극소수의 부농과 일본인 지주의 몫이 되었다.

부안의 역사는 농민의 역사이기도 하다. 새만금도 초기의 출발은 농업용지의 확보였으나 시대가 바뀌고 생산방식이 바뀌면서 지금은 스마트 수변도시로서의 모습을 위해 계획을 세워두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졌을 때만 하더라도 부안읍성이 자리하고 있었다. 조선초에 만들어진 부안읍성은 1416년(태종 16) 부령현과 보안현을 병합하여 만들 때는 토성이었으나 이어 석성으로 고쳐 쌓아 1487년(성종 18)에 완공되었다고 한다. 부안읍성에는 세 개의 문루가 있었는데 동문 다락은 청원루, 서문은 개풍루, 남문은 취원루라고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져 버린 흔적들이지만 부안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읍성의 인구가 늘어나고 도로들이 추가로 개설되면서 읍성이 파괴되었고 광복 이후에는 거의 사라져 버렸다.  

부안이라는 지역은 입지가 좋았기에 죽막동에서 사비, 군산 여방리, 당항성, 대가야, 삼천포 늑도, 김해의 금관가야, 신라의 수도가 있었던 금성까지 이어졌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당산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 지난 8월 당산문화유산을 중심으로 2024 부안문화유산야행이 열리기도 했었다.  

문화와 역사는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 지금 대다수가 누리는 음악도 50년 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될 수가 있다. 부안에서 열리는 축제와 문화의 이야기들은 때로는 당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고 과거를 회상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기억이 되어주기도 한다. 미래에는 2024 새만금의 여름을 어떻게 기억할까.


새만금 개발공사. 부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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