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바꾼 모습의 통영의 과거를 조명하는 통영시립박물관
최근 통영은 국가유산청 주관 ‘2025년 국가유산 미디어아트’ 공모사업에 최종 선정돼 사업비 18억 원을 확보했다고 한다. ‘국가유산 미디어아트’는 독창적인 이야기와 첨단 정보 통신 기술(ICT)을 접목해 국가유산의 새로운 가치를 선보이는 사업으로 지역의 국가유산을 쉽게 알리고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국가유산 향유 및 야간 콘텐츠 육성을 위한 국가유산청의 공모사업이다.
통영시립박물관에서는 지난 8월 30일부터 12월 15일까지 특별전으로 기획전시실에서 통제영 폐영 이후의 통영이 전시되고 있었다. 통제영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전시전이다. 삼도수군통제영 미디어아트는 통제영으로 가는 길에서부터 프로젝션 맵핑 등 다양한 빛 오브제가 펼쳐지며 각 관아 시설마다 각기 다른 이야기를 담아 통제영 300년 기억을 따라가도록 구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도 도시에 자리한 공공시설이나 정부단체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래서 유치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다. 국가예산이 배정이 되고 사람이 온다는 것은 그만큼 지역경제에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에 삼도수군을 관리하던 통제영은 얼마나 큰 비중을 가지고 있었을까.
통제영지는 조선 선조 36년(1604년)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창건, 고종 32년(1895년) 폐영될 때까지 약 300년 동안 해상요충의 총사령부로서 번성을 이루었던 곳으로써 문헌상 기록이나 1996년에 실시한 바 있는 지표조사결과에 의해 당시의 통제영에 있었던 100여 동의 주요 관아건물들의 위치확인이 가능하다. 삼도수군통제사로서 이순신이 잘 알려져 있지만 그는 통제영이 있었을 때 통영에서 상시 근무하지는 않았다.
통제영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 이듬해인 선조 16년(1593년) 삼도수군통제사 직제를 새로 만들어 당시 전라좌수사였던 이순신에게 이를 겸임케 한 것에서 비롯되었다. 통제영지는 동남향으로 통영 앞바다를 굽어보는 지형으로 통제영지 주변일대는 일반주택지로 되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이 국방에 관한 권한이다. 1895년 고종은 칙령을 내려 삼도수군통제영을 폐영하였다. 그리고 통영지역에서 찬란했던 통제영의 모습이 하나둘씩 사라지게 되고 일본강점기에 통영은 거의 모든 지역에서 사라지면서 새로운 도시로서의 발달을 하게 된다.
통영시는 대표적인 야간관광 시설로 한국관광 100선이며 미디어파사드 시설인 디피랑의 성공적인 운영 노하우와 시의 문화예술 역량을 집결시켜 삼도수군통제영 미디어아트쇼를 정부지정 명예문화관광축제인 통영한산대첩축제와 더불어 통영시의 대표 야간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데 있어서 통제영의 역사는 큰 의미를 가지게 된다.
이번 전시는 통영의 옛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통영 근대지도와 호주선교사 자료, 일제강점기 통영 상점자료 등 총 100점의 유물과 사진자료 등이 전시되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엿볼 수 있는 옛 지도와 사진을 통해 1910년부터 1940년대까지의 통영모습, 호주선교사들에 의해 호주로 수출됐던 통영여인들이 만든 자수식탁보등도 볼 수가 있다.
1910년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면서 통제영의 주요 건물이 자리했던 곳에는 일본이 세운 근대 건축물이 자리 잡고 세병관 운주당 등 통제영을 상징했던 건물들은 학교, 법원 등 관공서 등으로 변했다.
근대 통영은 삼도수군통제영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이 필요한 어업자원 등을 확보하기 위한 도시로 바뀌었다. 지금 기억하는 통영의 토대는 통제영이 사라진 후의 통영의 모습이다. 급격한 변화는 통영 사람들의 많은 생활을 바꾸었다고 한다.
통제영 이후의 통영은 척천루에서 강구안과 남해바다를 조망하던 동충산은 깎여 일본인 거주구역과 상업지구가 조성이 되었다. 추석이 지나고 오는 20~21일 통영 삼도수군통제영과 통제영거리 일원에서 '통영 문화유산 야행'을 개최한다. 통제영거리 주무대에서는 전통과 현대의 만남으로 국악인 박애리와 공연예술가 팝핀현준의 개막 공연이 열린다. 또 전통공예품 중 제일을 상징하는 '12 공방'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는 국가무형문화유산 보유자의 작품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을 볼 수가 있다.
1945년 8월 '우리의 재산을 보전하자'는 구호가 적힌 만장형태의 현수막을 들고 광복에 환호하는 통영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일상과 문화를 접하면서 급격한 변화를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삶은 지속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