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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Oct 18. 2024

한국인의 죄와 벌

형벌을 결정을 빼앗긴 조선인의 비극 서대뮨형무소 기념관

사형선고를 받고 극적으로 살아남아 감옥에서 시간을 보낸 후에 쓴 소설에서 주인공은 다른 누구보다 라스콜니코프 자신이 범죄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스스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모습이 주로 그려지지만 그는 회피와 합리화를 거듭하며, 실제로 끝까지 자신의 범죄를 뉘우치지 않는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라스콜리나코프로 본질적인 죄와 벌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 작품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라는 책이다. 

보통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치소 혹은 교도소라고 부르는 곳에 갈 일은 없기에 감옥의 구조에 대해 잘 알지를 못한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역사에서 일제강점기가 있었기에 교도소 세트장이 아닌 실제 감옥이었던 곳을 방문해 볼 수가 있다. 대표적인 곳으로 의병 등 반일세력을 탄압·수용할 목적으로 만든 감옥인 서대문형무소다. 

한일합방이 되기도 전에 1905년 을사늑약과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로 인해 정부의 법집행의 자율성이 일제에 의해 크게 침해되면서 사실 조선인에 대한 죄와 벌을 자율적으로 관장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일본인 건축가 시텐노 가즈마〔四天王要馬〕의 설계에 의해 1908년 10월에 개소가 된 곳이 서대문형무소 이전의 경성감옥이었다.  

인권이라는 것에 대해 아예 고려가 되지 않았던 시절에 이곳에 수감되었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유관순이 있다. 영화 항거에서 유관순 열사가 이곳에서 갇혀 있었다. 영화 항거는 1919년 3.1 만세운동 후 세평도 안 되는 서대문 감옥 8호실 속, 영혼만은 누구보다 자유로웠던 유관순과 8호실 여성들의 1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상당히 많은 시설과 건물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상징적이었던 건물 여러 곳만이 남아 있다. 이곳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당시의 분위기를 충분히 체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1912년 경성감옥이 마포 공덕동에 신축 옥사로 이전함에 따라, 현저동에 있던 기존의 감옥시설은 ‘서대문감옥’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대문감옥 산하에는 종로출장서(옛 전옥서), 대평동 출장소 및 영등포·인천·춘천 분감을 두었다. 1923년 ‘서대문형무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유관순으로 대표되는 이곳은 여옥사다. 유관순 열사가 감옥에 갇히기 3년 전인 1916년 구치감으로 지어졌는데 여성 미결수를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일제강점기에 여성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 갇혀 고난을 겪었다. 

감옥의 초입에서부터 유관순 열사의 생애에 대해 접해볼 수가 있다. 짧은 삶을 살았으며 천안 아우내장터에서 만세운동을 벌이고 이곳에 갇혀 있었는데 그녀가 있다 여옥사 8호 감방은 1919년 3.1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1년 뒤에 감옥에서 1주년 옥중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큰 고난을 겪게 되었다. 그리고 유관순을 같은 해인 9월 28알에 세상은 떠나게 된다.  

실제로 이곳에 가보면 알겠지만 십 수명이 이곳에서 있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모두가 앉아있을 수가 없어서 서서 돌면서 걷다가 순번에 따라 한 명씩 쉬는 형태이기도 했다. 

유관순은 1919년 3월 5일, 남대문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풀려나고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해 4월 1일 천안 아우내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했는데 이때 부모가 현장에서 순국하고 이곳에 갇히게 되었다. 결국 고문 후유증으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고 2019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서훈되었다. 

독립운동이라는 것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죄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일제강점기에 일제에게는 죄가 되었고 감옥이나 혹은 고문을 받아야 할 벌로 돌아왔다. 서대문형무소에 많은 한국인이 수용된 것은 1919년의 3·1 운동으로 인해 수감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형무소에 투옥된 독립운동가에게는 형기가 확정되기 전부터 온갖 취조와 고문이 자행되었다

죄와 벌은 결국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다. 시대마다 죄와 벌의 기준은 계속 바뀌게 된다. 있었던 것이 사라지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생각도 못했던 것들에 대한 범죄가 생겨나기도 하고 과거의 범죄가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죄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제강점기의 삶이 어떠했을까라고 상상을 해볼 수는 있어도 정확한 사회상을 알기란 쉽지가 않다.  유관순 열사에게 왜 독립만세운동을 했느냐고 질문을 던진다면 그냥 그래야 했으니까. 그것이 맞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할까. 

충청남도에서는 매년 유관순의 이름을 딴 유관순횃불상을 수상하고 있다. 한 사람의 정신과 삶, 사회정의 화해화 평화 구현 등에 이바지한 여성이 대상이다. 과거의 역사와 삶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죄와 벌은 다른 이가 아닌 우리 스스로가 만든 사회정의의 기준에 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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