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년 10월 30일로 돌아가본 옛날의 나주역
신혜선 주연의 용감한 시민이라는 영화는 학교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을 그렸다. 힘의 불균형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권력구도로 인해 학교에서는 폭력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만연하게 되면 큰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법과 경찰등의 공권력이 불균형하게 적용이 되며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일제강점기에는 권력을 가진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에게 수많은 폭력과 폭압을 해왔다. 드러난 사건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은 사건들도 있다.
일제강점기에 거의 반강제적으로 농지를 확보한 대부호들이 살던 곳은 김제, 정읍, 나주 같은 지역이었다. 이곳에 땅을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은 큰 부를 누렸다. 나주에서도 당시 중심이 되던 도시인 광주로 통학을 했던 학생들이 있었는데 그렇게 통학했던 곳이 옛 나주역이었다.
나주역의 옆에는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는데 당시의 모습을 재현해 두고 있다. 이곳에서는 2024년까지 나주학 시민 아카데미로 나주 사람들의 유학생을 만나볼 수가 있다. 나주 근현대 기탁자료를 중심으로 이우러 지고 있다.
한국에서 독립운동은 황제의 사망과도 관련이 있다. 1919년 삼일운동은 고종의 사망으로 일어났고 1926년에는 순종 사망을 계기로 6.10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운동을 계기로 민족 역량을 통합하자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그렇게 민족 역량이 통합되기 위한 조직이 생겨났는데 광주 지역에 신간해과 조직된 것은 1927년 10월로 광주 학생독립운동의 기운이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나주역에는 당시에 일본인 대지주의 자녀들과 빈곤한 집안의 한국인 자녀들이 매일 마주치던 곳이었다.
법과 공권력이 일본인들의 편을 들고 있었으니 일본학생의 한국학생 멸시는 만연해 있었다. 광주발 통학열차에서 내린 광주중학 3학년 후쿠다 슈조[福田修三] 등 일본인 중학생들이 광주여자고등보통학교(현 전남여고) 이광춘·박기옥 등 한국인 여학생들을 희롱하기 시작했었다.
희롱을 당하던 박기옥의 사촌동생 박춘재는 후쿠다 슈조를 저지하였지만 우월의식으로 가득 찬 일본인 학생이 한국인 남학생의 말을 들을 리 없었는데 두 사람이 멱살잡이에 들어가자 광주고보 한국인 학생 30여 명과 광주중학 일본인 학생 50여 명이 몰려들어 집단 난투극이 일어났다.
그렇게 일어났던 집단 난투극에 경찰이 출동하였지만 일방적으로 한국인 학생들을 무차별 폭행하였다. 일제경찰의 행동은 한국인 학생들에게 기름을 부었고 며칠 뒤에 있을 11월 3일 광주 학생항일운동을 계획하였다.
11월 3일은 일본인들에게 이날은 명치'천황'의 탄생을 경축하는 명치절(明治節)이었다. 명치 천황 즉 메이지 천황은 근대 일본의 상징이자 막부가 종식되고 천황 친정 체제가 확립되는 격동기 일본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일본을 아시아 유일의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합류시키며 일본인에게 아시아 최강국의 국민이라는 자부심을 심어 주었기에 일본인들에게는 중요한 날이었다.
법과 공권력은 한국인들에게 어떤 보호망도 되지 못했던 일제강점기 나주에서는 명치절에 광주학생항일운동이 본격 시작되었고 박준채, 박기옥, 이광춘 등은 광주학생항일운동 이후 모두 학교에서 퇴학되고, 일제경찰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