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정치의 변곡점에서 살았던 지산 김복한 100주년
역사를 재미있게 공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이 있으면 매우 유용하다. 이미 기울어가고 있었지만 조선 스스로가 마지막 개혁을 한 것은 갑오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 1894년 (고종 31년) 음력 7월 초부터 1896년 (고종 33년) 2월 초까지 군국기무처의 개화파 관료들에 의해 추진된 조선의 서구화·근대화 개혁. 정치, 경제, 군사, 법률, 사회의 전 분야를 망라하는 넓은 범위의 개혁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갑오개혁을 '갑오경장(甲午更張)'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경장(更張)은 "다시 당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1860년 홍주(홍성)의 소향리레서 태어난 사람이 김복한이다. 1892년(고종 29)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교리·사서·대사성·승지 등을 역임했으나 1894년 6월 갑오개혁 때 벼슬을 버리고 홍주로 내려온다. 홍주성역사관에서는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지산 김복한 선생이 세상을 떠난지 100주년을 맞아서 '100년을 기다린 바람, 자산 김복한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다.
한 사람의 기록을 잘 살펴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가 있다. 사람이 글로 남겨둔 기록은 그 사람의 생각과 사상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보통은 전시전에서 그 흔적을 천천히 읽기란 쉽지가 않다. 이곳에는 지산 김복한 선생의 연표, 갈뫼에서 난 척화파의 후손, 당문을 이끌다, 홍주의병과 파리장서운동 등 세파트로 구분이 되어 있다.
이곳에 전시된 유물은 독립기념관과 결성농요 농사박물관의 협조로 이루어졌다. 불과 20대 초반 나이에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하면서 그의 정치도 다른 길을 걷게 되었지만 세상의 변화는 김복한이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홍주에 내려온지 1년뒤인 1895년에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에 의해 시해가 된다. 그는 주변의 인물들과 함께 홍주의병을 일으켰지만 곧 투옥이 된다.
그렇게 정치인이자 독립운동가로 소통하며 살았던 그의 흔적이 이곳에 있는데 그렇게 조용히 살면 좋았겠지만 1905년에 결국 강제적인 을사조약으로 국권은 없어져버린다. 그러헥 다시 의병을 일으키고 잡히고 다시 여러 독립운동 활동을 하면서 투옥과 석방을 반복하게 된다.
갑오경장에서 경장은 거문고 소리가 조화롭지 못하면 반드시 그 줄을 풀어서 다시 조여야 한다는 의미다. 가야금이나 거문고의 줄이 잘못되면 그 줄에서 나오는 음은 조화롭게 될 수가 없다. 모든 것이 새롭게 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정말 참된 정치인을 볼 수가 없는 현실은 결국 전체적으로 국가를 막다른 길로 이끌게 하기도 한다.
한원진에서 시작한 남당학파는 정혁신, 이건운, 이돈필, 이설, 김복한등을 거쳐서 청산리 전투를 이끌었던 김좌진 장군에게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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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역사관에서 지산 김복한을 만나보고 다시 홍주읍성을 걸어본다. 홍성의 서부면 이호리 산수동은 물이 좋기로 유명해서 산수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렇게 일본에 의해 투옥되었다가 석방되기를 반복하던 지산 김복한은 산수동에 정착하면서 제자를 기르면서 말년을 보내다가 1924년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