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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하게 살다 간 39년

나주에서 태어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시를 짓다간 백호 임제 문학관

100세 시대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몇 년쯤 살다 가면 넉넉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떠나는 삶일까. 인생은 아무리 길어도 짧으며 짧기만 한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굵게 획을 그을 수가 있다. 조선의 천재시인이라고도 불렸으며 당대의 잘 알려진 기생들과도 교류를 하며 자신의 길을 걸었던 사람이기도 하다. 세상의 명예나 도둑질하는 벼슬아치를 싫어했기에 함부로 어울리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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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나주에는 백호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이곳까지 와서 백호 임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접하게 된다. 그의 시는 조금 독특하면서도 수많은 이야기를 시로 읊으면서 마음껏 세상에 대해서 울분하기도 하고 다양한 사연을 써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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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초(靑草) 우거진 골에 자는다 누엇는다

홍안(紅顔)은 어듸두고 백골만 무쳤느냐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퍼하노라.


그는 당대에 가장 알려진 기생이라는 황진이를 만나기 위해 평안 도사로 임명되어 가던 중에 방문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녀는 세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무덤을 찾아가 잔을 올리고 시를 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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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방한 기품과 재기 넘치는 글로 찬사를 받았던 임제는 1549년 11월 20일 전남 나주 회진에서 5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아버지 임휘진과 어머니 경주 김 씨 사이에서 5남 3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임제는 평생을 술 좋아하고 학문도 좋아하고 기백이 넘치는 배움으로 자신을 채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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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관직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황진이를 추모하는 시 한 수로 인해 질책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옳고 그름을 제대로 보지 못한 당대의 정치의 권력세계와 이권과 세력에 양심을 팔고 사는 유학자들의 처신에 실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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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가지고 나주를 방문한다면 그의 시를 곰곰이 씹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옛 말이겠지만 초탈하여 글에 막힘이 없고 심성이 맑았다는 것을 볼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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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 임제가 남긴 700여 수가 넘는 한시 중 전국을 누비며 방랑의 서정을 담은 서정시가 제일 많다. 절과 승려에 관한 시, 기생과의 사랑을 읊은 시가 많은 것이 조금은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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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하면 노래하고, 깨면 비웃으니 세상이 싫어하네”


그의 삶을 보면 영화 동방불패에서 임청하가 맡은 동방불패가 연상된다. 세상의 일이 뭐 대수겠는가라는 태도와 세상이 만들고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벗어나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그런 모습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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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임제문학상은 나주 출신의 문학가 백호 임제의 작품 세계와 시대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8년 제정되었으며 대한민국 문학 발전에 기여한 문인들을 지원하는 상으로 올해로 4회를 맞았다. 제4회 백호임제문학상 본상과 젊은 시인상은 9월 23일부터 11월 30일까지 최근 2년 내 발간된 창작시집을 대상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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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편에 서지도 않았으며 당쟁에 휘말리기를 꺼려한 백호 임제는 그 이후에 스승인 성운(成運)이 죽자 세상과 인연을 끊고 벼슬을 멀리한 채 산야를 방랑하며 혹은 술에 젖고 음풍영월(吟風詠月)로 삶의 보람을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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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 중에 하나가 나이이기도 하다. 몇 살쯤 먹으면 사람이 깨달음을 얻는 걸까. 자신이 얻는 것에 있어서 언제쯤이면 욕심을 내려놓을 수가 있을까. 그렇게 전국을 누비면서 여러 여성들과 애정의 표현을 시루 나누었던 임제는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5년 전인 1587년 8월 11일 고향 나주 회진에서 39살의 나이로 넉넉한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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