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남자들이 결혼을 선택하는 방식의 변화
20세기의 결혼과 2000년대의 결혼은 다르며 2024년의 결혼 방식은 너무 많이 달라졌다. 20세기의 결혼방식은 남자에게 유리했지만 동시에 경제적인 부분을 대부분 책임져야 했었다. 대신에 집안에서 누리는 권리는 상당했었다. 여성이 이혼했을 경우 많은 것이 박탈당하던 시대였다. 물론 90년대에 결혼한 사람들은 그렇지는 않았다. 여권이 신장되면서 좋아진 것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안 좋아진 것도 상당히 많아졌다. 단지 결혼해서 살았을 뿐이고 남편이 성장하는데 그다지 역할을 하거나 주부로서의 역할을 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혼할 때가 되면 가사 자체가 마치 월급을 정기적으로 받았던 것처럼 계산이 된다.
한국은 법적으로 결혼을 하지 않으면 많은 부분에서 제약을 받게 된다. 특히 자식들의 경우 미성년일 때는 사회적으로 적지 않은 불이익 아닌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래서 20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남자와 여자가 만나 아이를 낳거나 임신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이어지는 것이 상식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렇게 결혼으로 이어지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그 비율은 확실히 줄어들었다. 게다가 정우성처럼 책임자체를 지지 않고 아이존재를 없애려는 남녀들도 적지가 않다.
일반적으로 결혼은 여성이 자신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조건이 좋은 남자와 결혼하려고 한다. 물론 여권이 신장되고 많은 것이 바뀌었으니 이런 분위기도 바뀌어야 하지만 여전히 바뀌지 않고 그 결과 남자는 정말 엄청나게 신중하게 결혼할 여자를 선택하던지 아예 연애과정을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영화나 방송에서 만들어진 이미지를 믿지 않기에 정우성이 보여준 이미지나 CF등에서 표현되는 말이나 모습에 별다른 관심을 가진 적은 없다.
정우성이 이번 논란으로 인해 확실하게 이미지는 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생활측면으로 보았을 때 깔끔하게 살았을 것처럼 구설수가 많이 나오지 않았었다. 그 결과 다양한 분야에서 모델 활동뿐만이 아니라 작품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도 제약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다비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동시에 결혼을 했더라면 구설수에 오르지는 않았겠지만 정우성의 선택은 양육비를 줄지언정 결혼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정우성의 선택을 보면서 결혼을 생각하는 가치관의 변화와 더불어 미래가 있으며 개인적인 능력을 갖춘 남자의 선택은 결혼이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결혼을 보는 가치관이 남자에게 책임을 여자에게는 헌신을 요구했었다. 그렇지만 여성의 교육 수준도 높아지고 사회진출도 많아지면서 결혼에서 여성에게 헌신은 사라지고 자유와 선택이라는 것만이 남았다. 여성의 가치관은 그렇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 책임은 그대로 요구했던 것이 2000년대에서 2010년 초반까지의 한국의 결혼형태였다. 사실 법은 약자를 위해서 존재햐야 하지만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에게 매우 유리하지만 유일하게 약자 편에 설 때가 이혼등을 할 때다.
정우성이 선택한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한국사회와 정치인들이 결혼을 보는 관점에 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혼이 완전한 등가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남성의 역할과 여성의 역할이 균형을 이루지 않고 누군가의 책임으로만 유지될 수 있다면 결국 결혼이나 출산율은 절대 올라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이제 결혼은 행복이 기반이 아니라 적어도 불행하지 않을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면 선택을 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슬람이나 특정상황이 아니라면 OECD의 국가 중에서 그나마 출산율이 올라간 국가는 남자와 여자 누구에게도 큰 책임이나 헌신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