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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8. 2024

나옹대사의 여정길

사과향이 풍겨 나는 공간에 자리한 작은 사찰 수정사 

고려왕조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사람으로 태조 왕건이 있지만 고려후기로 오면 비극적이라고 해아 할까. 노국공주와의 사랑과 요승이라는 신돈과의 악연으로 잘 알려진 왕이며 고려의 실질적인 마지막 군주로 평가받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공민왕 역시 실패한 군주로 남았지만, 그의 개혁 시도는 신진 사대부들 중에서도 급진파였던 정도전 등과 신흥 무인 세력이었던 이성계에게 많은 힘을 부여해 주기도 했었다. 

올해는 청송군을 방문해 본 것이 마지막일까. 12월 청송정원이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지 궁금해서 이곳을 방문해 보았는데 청송정원은 내년을 기약하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진보, 영양, 영덕으로 갈림길이 있으며 객주문학관과 신촌약수탕까지는 멀지 않은 곳이다.  

산소카페 청송정원에서 지근거리에 수정사라는 사찰이 자리하고 있다. 수정사는 고려 공민왕 때 인연이 있었던 나옹대사가 처음 세운 사찰로 조선시대에 고쳐지었다고 한다. 

나옹대사는 원(元)의 한(漢)족계 이주민 출신의 아버지의 아들로 출생한 그가 출생한 지역은 고려의 경상도(慶尙道)의 영해(寧海)였다고 한다. 이후 여러 사찰에서 공부를 하며 전국을 유랑했던 나옹대사는 1371년(공민왕 20년)에, 법복(法服)과 발우(鉢盂)를 하사 받았으며, 그와 동시에 왕사(王師)이자, 대조계종사(大曹溪宗師)로 봉해졌다고 한다. 

작은 사찰이지만 아늑한 느낌이 드는 곳이기도 하다. 규모로만 본다면 암자정도에 불과하겠지만 나옹대사라는 이름이 붙었기에 고찰처럼 생각되는 곳이기도 하다. 대웅전은 조선시대 양식으로 단아하며 옆면 3칸, 엽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의 기와지붕 건물이다. 

수정사의 경내에는 대웅전과 산신각, 요사채만이 있다. 옆에는 살림집처럼 보이는 건물만 하나 있다. 수정사는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물과 돌이 마치 수정처럼 빛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초기에 지어졌을 때는 이보다 규모가 더 컸을 것으로 보고 있다.  

산소카페 청송정원을 방문해보려고 하다가 수정사로 왔는데 우연하게 이곳이 왕평의 묘소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고려의 옛 궁터 만월대의 달 밝은 밤,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적으로 만든 가락인 황성옛터이기에 고려말 공민왕과 잘 어울리는 그런 노래 같다는 생각도 든다.  

작은 사찰이지만 사철 여행으로 청송 8경에 들어가는 곳으로 선정이 된 것은 그만큼 역사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려 공민왕과의 인연으로 불교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던 나옹대사는 공민왕이 1374년에 세상을 떠나고 난 2년 뒤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수정사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황성옛터의 가사를 쓴 왕평에 대해 접해본다. 모든 것에는 흥망성쇠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청송의 겨울이 지나면 다시 청송의 봄이 올 때 이곳을 방문해 봐야겠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 져요


- 황성옛터 (왕평(王平) 작사, 전수린(全壽麟) 작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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