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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못질한 안동 병산서원

자연에서 배우고 전통 건축의 방법을 채워놓은 안동의 병산서원

최근 KBS가 아직도 드라마를 찍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것은 안동의 유서 깊은 병산서원에 못질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서다.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는 제목의 드라마는 조선시대 금수저 여자와 완벽한 남자가 만나면서 벌어지는 드라마다.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모든 설정이 매우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거의 완벽한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환상적인 상상을 하는 사람들에게만 어필하고 있다. 지금도 그런 비현실적인 드라마에 대한 욕구가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드라마 제작진들이 안동 병산서원에 아무 생각 없이 못질을 하는 바람에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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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안동 하회마을을 방문했을 때 안동 병산서원도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안동의 도산서원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진 공간으로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운 건축미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겨울의 추위가 있기는 하지만 안동 병산서원은 세상의 복잡한 일에서 벗어난 듯이 선비처럼 고고히 그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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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을 대표하는 인물로 서애 류성룡이 있다.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퇴계 이황의 공간에서 배움을 청하고 그리고 벼슬을 시작해서 우의정에 오른 사람이다. 그가 쓴 징비록은 여러 번 본 기억이 난다. 그는 왜군이 쳐들어오기 전에 물의 도시이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무성서원이 있는 정읍의 현감이었던 충무공 이순신을 전라 좌수사에 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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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의 이름은 안동 하회마을을 품고 있는 병산이라는 산과 함께 따온 것이기도 하다. 서원 공간은 크게 둘로 나뉘는데, 학생을 가르치는 강당 영역과 제사를 모시는 사당 영역이다. 이날은 정문은 미리 문을 닫아놓고 측면의 작은 문을 열어두었기에 그곳을 통해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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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하면 외삼문을 통해 들어오면 나오는 만대루가 눈에 뜨인다. 좁은 외산문을 통해 들어왔을 뿐인데 탁 트인 만대루는 당당함을 보여준다. 병풍처럼 펼쳐지는 병산과 같은 모습과 닮아 있는 것이 바로 만대루다. 어떤 건축가들에게도 만대루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동양건축이나 서양건축을 전공한 모든 건축가들에게 만대루는 마음을 사로잡는 건축물이라고 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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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의 만대루를 뒤로하고 위쪽으로 올라가면 입교당이라는 건물이 나온다. 병산서원이라고 간판이 앞쪽에 걸려 있고 뒤쪽에는 입교당이라고 되어 있다. 양쪽에는 방이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은 비워져 있다. 한옥은 꼭 대칭이 아니기도 하지만 비움과 채움이 있어서 여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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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에 많은 유생들이 오가고 이곳에서 배움을 청했을 때 지금과는 다른 상급생과 하급생의 인연이 있지 않았을까. 서애 류성룡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해가 뜨는 모습을 보아도 좋고 한 낯의 햇살도 해가 넘어가는 모습이 만대루에 걸려 있는 것을 보는 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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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산서원은 고려 시대의 사림의 교육 기관인 풍산현의 풍악서당(豊岳書堂)을 선조 5년(1572년)에 류성룡이 안동으로 옮겨왔고, 1614년에 병산서당으로 개칭되었다가 철종 14년(1863년)에 사액(賜額)되어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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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택과 서원은 모두 자연의 모습을 닮아 있다. 도시계획이나 건축을 전공하게 되면 꼭 배우는 건축가로 르 꼬르뷔지에가 있다. 서양건축은 동양건축과 달리 누가 그 건물을 지었느냐가 중요한 반면에 동양건축은 누가 거기에 거처하면서 살았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서양건축은 누가 만들었는지가 중요하며 동양건축은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이 거주하였느냐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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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이제는 어떤 관점을 가지고 건축물을 지었느냐가 중요한 시대이기도 하다. 병산이 있는 곳의 낙동강이 흐르는 곳을 걸어본다. 르 코르뷔지에는 급강하하는 지붕선이나 마감이 덜된 콘크리트등이 특징의 설계안을 만들었으며 건축의 피카소라고 불리면서 근대건축의 대명사로 누구에게도 비판받지 않을 정도의 족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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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현재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안동 하회마을과 그 이름만 들어도 건축미를 느끼게 해주는 만대루가 자리한 병산서원을 거닐어본다. 더 많은 사람들이 서애 류성룡에 대해 알고 그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는지 알게 된다면 한국사람들이 가졌던 고유의 가치가 세계에서 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 않을까. 자 이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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