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나라의 세자다.
지난 5월부터 40부작으로 방영을 시작한 군주 가면의 주인이라는 드라마는 소설을 각색하여 만들었다. 나라의 주인이며 군주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살아가며 이는 외부 세력에 의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하는 원작 군주는 외형상 조선의 군주 이야기를 다룬 것 같지만 결국 사랑밖에 모른다는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금도 공공재인 물이나 전기는 특정 집단에 의해 좌지우지되곤 하는데 봉건제 국가였던 조선에서는 더했을 가능성이 크다. 물, 구리 등 꼭 필요한 공공재를 장악한 편수회와 국가를 통치하는데 꼭 필요한 왕권을 가지지 못한 조선왕실과의 대립구도가 그럴듯하게 세팅이 되었으나 드라마를 의식한 탓인지 거기에서 머무른 후 결국 사랑을 쟁취하는 과정으로 그려져 나간다.
소설은 선대왕으로 인해 조정에 원한을 품고 절대 악인 된 대목과 그 손녀 화군과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세자 이선과 비천한 출신이지만 같은 이름의 이선과 그 둘이 사랑하는 여자 가은을 놓았다. 소설에 개연성은 상당히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냥 사랑꾼 이야기를 접하고 싶다면 무리가 없을지 몰라도 제목에 군주라는 타이틀을 붙였다면 이야기 전개는 달라질 필요성이 있었다.
소설의 설정대로라면 가면 쓴 세자 이선은 그냥 철부지에 불과하다. 백성을 애민 하는 척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시 기만이 있는 것이다. 대리청정을 했다 하더라도 조선의 세자는 그 무엇도 명령을 내릴 수 없을뿐더러 조정의 일에는 아무런 간섭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은 동궁에 있는 나인이나 내시에게 수발을 들게 하는 정도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다. 그래 십분 이해해서 변장을 해서 궁궐 밖을 나갈 수 있다 치더라도 주제넘게 백성들의 일에 참견하는 것은 왕의 권위를 넘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내심 이 소설을 읽으면서 한국판 철가면의 스토리가 만들어지는가라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러나 근 10여 년간 TV에서 나온 검증도 안된 역사 사랑꾼 이야기로 전개가 되었다. 우리네 역사가 그러했던가. 조선시대의 왕들과 세자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교육과 경연을 통해 성장해왔다. 중전과 수많은 후궁이 있었던 이유는 왕의 재목을 가진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였다. 단순히 왕이 여자를 탐해서가 아니었다.
어쨌든 이런저런 고비를 넘겨서 왕세자 이선은 보부상의 두령이 된다. 사실 부보상이 맞는 말이라고도 하지만 대부분 보부상이라고 알고 있으니 그렇게 부르는 것도 무리는 없어 보인다. 지금보다 물자가 많이 부족했던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이 없는 물자로 인해 많은 고난을 당했던 것도 사실이다. 물자가 부족하니 돈이 조금 있는 사람이 매점매석을 통해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사에서 그들을 거상이라고 치켜세워준다.
"네가 기억났다. 5년 전 죽은 서윤의 딸이었지. 서윤을 처형한 것은...... 내 실수였다. 미안하구나. 너를 위해 뭔가 해주고 싶다. 내게 바라는 것은 없느냐? 난 이 나라의 왕이다. 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줄 수 있어."
군주는 그냥 가볍게 읽어볼 만한 소설이다. 특정 세력의 비호와 그로 인해 고단한 백성들의 삶을 어떻게 얼러만지고 성장해가는 군주가 아닌 내 여자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는 남자 이선의 삶을 접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