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의 김세균 판서고가와 한수 명오리 고가의 설경
요즘 들어 한적한 시골이나 어촌을 배경으로 그려지는 예능등이 많아지고 있다. 기존의 예능방식과 달라지고 있는 것은 현실적이고 직접 그 공간으로 들어가서 다양한 체험을 한다는 것이다. 시골풍경을 보면서 자라난 세대들의 연령이 많이 높아지고 젊은 세대들은 이런 풍경마을에서 거주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신선해 보이고 있다. 손맛 가득 시골 밥상을 먹고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린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그냥 그 자연을 즐겼던 곳으로 들어가 본다.
저 뒤에 보이는 설산이 바로 제천의 덕주산이라는 산이다. 저 산을 배경으로 높인 두 채의 집이 있다. 기와집의 김세균 판서 고가와 초가집으로 만들어진 한수 명오리 고가다. 이 두 집의 공통점은 모두 충주댐 건설로 이곳으로 옮겨졌다는 것이다.
눈이 내린 밭을 지그시 밟아가면서 시골마을의 설경을 만나본다. 필자 역시 어릴 때 시골의 큰 아버지댁에 가면 이런 풍경을 본 기억이 있었다. 그때는 불편하고 춥고 그런 것에 대한 생각이 따로 없었다. 눈이 많이 내린 덕분에 길이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기가 쉽지가 않다.
제천 명오리 고가는 본래 한수면 명오리에 있던 것으로 안채는 일반적인 3칸의 툇집(앞 뒷 면에 기둥을 세우고 원래의 집 건물에 붙여서 지은 집)으로 민가 가족 구조를 볼 수가 있는데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과거 이 지역에서 흔히 사용하던 방식이었다고 한다.
내린 눈으로 지붕과 담장까지 덮여 있는 한수 명오리 고가는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가까이 있어 거의 튼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ㄱ자형의 안채는 안방을 중심으로 왼쪽에 부엌이 있고 오른쪽에 윗방이 있으며, 꺾이어 대청과 건넌방이 달려 있다.
고가의 옆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의 학생들이 모두 이곳에서 다닌다고 한다. 한수면과 더불어 이곳은 자연과 풍광만을 두고 본다면 살아볼 만한 곳이기도 하다.
학교의 운동장에는 소파 방정환 선생의 상도 세워져 있다. 소파 방정환은 왜 그렇게 어린이에 관심을 많이 가졌을까. 방정환의 집안은 상인의 집안으로 대단히 큰 기와집에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후에 가세가 기울면서 경제적으로 매우 궁핍하게 살았는데 이때의 기억이 아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눈이 쌓여 있어서 그 흔적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주초석이나 비석으로 보이는 옛 흔적들도 초등학교의 옆에 자리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누군가의 숙소로 보이는 작은 건물도 자리하고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선 후기 이조판서를 지낸 김세균의 소실이 살던 집인 김세균판서고가가 있다. 원래는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었으나 안채는 무릉리에 옮겨 짓고 지금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 ‘ㄱ’ 자형 구조로 가옥의 규모나 양식으로 보면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생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2월 12일은 음력 정월 보름으로 한국의 대표적인 세시 명절인 정월대보름이다. 시골풍경이 있는 곳에서 쥐불놀이도 하고 옹기종기 모여 부럼을 먹었던 촌캉스를 상상해 본다. 청량한 시골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도시를 벗어나 시골 라이프에 완벽하게 스며들듯이 힐링해 보는 그런 시간을 보내보기에 좋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