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광산 김 씨 예안파가 살았던 집성촌
사람은 태어날 때는 모두 똑같지만 살아감에 있어서 차이가 점점 벌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벌어진 차이로 인해 사람의 격이 달라지게 된다. 공자는 그렇게 사람을 보아서 등급을 나누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어디에 쓰여야 하는지 보는 것이 관상이다. 한국은 관상에 진심인 것이 있다. 사람의 꼴이라고도 하며 생김새의 평가이기도 하다. 영화 관상은 많은 인기를 누렸다. 넷플릭스 같은 OTT가 저변에 확대되기 전에 개봉한 영화로 수양대군대의 시대상도 잘 그려낸 영화다.
영화 관상을 촬영한 공간은 안동의 군자마을이라는 곳으로 영화 관상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군자마을이라는 이름은 조선 중기 대사헌을 지낸 한강 정구 선생이 ‘마을에 군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고 한 말에서 유래했고 한다.
안동을 방문한 길에 군자마을을 들려보기로 했다. 군자마을에서는 다도, 한복 만들기, 떡 만들기, 식혜 만들기 등의 체험도 할 수가 있는데 1970년대 중반 안동댐이 건설되며 수몰될 위기에 처한 군자마을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 재조성 한 것이라고 한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숙박 장소로 개방된 공간은 예안파 종택의 별당인 후조당과 후조당 사랑채, 읍청정, 산남정, 규수방, 군자방, 송죽방 등이 보이고 뒤편으로 소나무숲이 우거져 머무는 내내 솔향기가 은은히 풍기는 것이 색다른 매력이 있어서 좋다.
한국에서 사극은 마치 사골과 같은 영화 혹은 드라마의 소재다. 제한적인 소재에서 역사를 돌아보며 아이템을 만들 수 있는 사극은 쌓여 있는 역사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가장 아름답다는 건축물로 알려진 탁청정은 우아한 팔작지붕 아래 있는 현판은 한석봉의 글씨고, 마루에는 퇴계 이황 등 여러 학자의 시판(시를 새겨 넣은 판)이 걸려 있다. 산기슭을 따라 200~500년 된 국가민속문화재 고택들이 늘어서 있고, 마을 앞으로는 낙동강 줄기가 흐른다.
사람의 모습은 어떻게 바뀌는 것일까. 물론 태어난 집안도 큰 영향을 미치지만 자신의 얼굴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게 된다.
군자라는 기준은 공자가 처음 만들었다. 공자 이전의 시대에는 신분은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공자만이 자신의 노력에 의해 군자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보았다. 군자에게는 세 가지 기쁨이 있다고 보았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벗이 있어 먼 곳에서 스스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유봉자원방래 불역낙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성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인부지이불은 불역군자호)다.
유유자적하게 거닐고 한가로이 생각하며 무겁게 방향을 잡는다. 이곳에서는 한옥스테이를 할 수가 있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이곳에서 머물러봐야겠다.
안동에서 거주하는 어떤 사람들은 양반이라고 하는 것보다 선비 혹은 군자답다는 표현을 선호한다고 한다. 양반집안에서 태어난 것은 그냥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관상이 의미 있게 생각되었던 것은 바로 사람의 얼굴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점에서였다. 광산 김 씨는 광주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성씨로 고려 후반 중앙으로 진출했는데 한 분파가 안동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선경유방 유장백세(善慶遺坊 流長百世). 선을 행하고 덕행을 쌓음으로 집안에 경사가 있고, 그 가풍을 영원히 이어가라는 의미가 군자마을의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영화 관상은 모든 것이 자신의 뜻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대를 잘 만나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군자마을에는 역사와 사람의 이야기가 있으며 군자 같은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