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에 김기황이 낙향하여 건립한 정자
조선의 글이라고 하면 추사 김정희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조선 말기에 급진적인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을 추사 김정희는 다방면에 걸친 학문 체계를 수립하였던 사람이었다. 그와 인연이 있었던 사람이며 제자로 흥선대원군으로 잘 알려진 석파 이하응이 있다. 이하응은 추사 김정희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으로 왕실 종친이었지만 벼슬길에 나아갈 수는 없었다. 그런 그가 전국을 유람하다가 한 곳에 머물렀는데 그곳이 바로 안동이다.
안동으로 가다가 탁 트인 풍광을 보면서 잠시 멈추어 섰다. 이곳에는 풍천체육공원이 조성이 된 곳으로 거무개라는 정거장에서 내리면 된다. 풍천면에는 김기황이 낙향하여 자신의 선조가 세운 침류정에서 약간 서편으로 세웠는데 침류정은 임진왜란 때 사라져 버렸다.
취담정이라는 의미는 맑고 푸른 강물이라는 뜻으로 은거 지향적인 그의 삶이 담겨 있다. 이하응이 이곳에서 방문해 보니 수려한 경관에 감탄하여 그의 예서체 친필로 취담정 현판을 써주었다고 한다. 현재 국학 진흥원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는데 2023년에는 자연 풍경과 어우러진 정자의 현판을 국립 대구박물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취담정이라는 정자의 이정표를 보고 위쪽으로 걸어서 올라간다. 새로 설치된 계단 옆으로 가파르게 나 있는 길이 보인다. 예전에는 그 길로 올라 다녔던 것으로 보인다.
취담정이라는 정자에는 김기황이 지은 시가 걸려 있다.
반평생 아무것도 이룬 게 없음이 부끄러워
선조의 정자 곁에 작은 정자를 지었네
오백 년 뒤에도 옛집은 전해지고
삼십 리 앞에는 잔잔한 물이 흐르네
어찌하면 조상에게 경영한 뜻을 이어
아들 손자가 강학하는 터전으로 삼을까나
밤마다 강 위에 뜬 달을 하염없이 보는데
주인의 마음은 주인만이 아는구나
취담정에서 바라보니 말 그대로 앞에 강물이 흐르는 것이 보인다. 낙동강을 안고 흐르는 저 앞에 보이는 평야는 기산평야다. 취담정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이익공양식 목조 와가에 팔작지붕 오량가로 계자난간을 두른 누각형식의 구조이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이어지는 뿌리가 있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DNA에 기록이 남아 있으며 후손이 태어난다면 그 운명의 실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이다.
모든 현판은 신중하게 의미를 가지고 만들어지게 된다. 맑고 푸른 연못의 취담정, 고종이 내걸었던 경운궁은 경사스러운 운수가 가득한 궁, 정조는 창덕궁 존덕정에 온 시냇물에 비친 밝은 달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현판을 걸었다.
순천김 씨인 김기황은 사간원정언을 지냈던 사람으로 흉년에 백성을 구제하였으며 강물을 굽어보며 나라의 미래를 걱정했었다고 한다.
취담정의 옆으로는 언제 심어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나무밭이 펼쳐져 있다.
세상에는 일어날 만한 일들만 일어나기도 한다. 어찌 보면 흘러갈 일은 흘러가게 두는 것이 낫다. 삶에는 수많은 기억할 만한 사건들도 있고 아주 작은 성공과 실패 혹은 큰 성공과 실패도 있다. 김기황이 생각했던 세상과 이루고자 하는 것은 모르겠지만 그의 흔적이 취담정에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