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평군에 자리한 김득신 문학관에서 만난 한 사람이야기
어떤 사람의 삶을 지켜보면 그들의 일상과 가치관을 볼 수가 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도 알기에 쉽지 않은 삶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제대로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빠르게 가는 사람도 있고 느리게 가는 사람도 있다. 빠르고 느린 것에 대해 장단점이 있다. 분명한 것은 꾸준함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시도할 때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분명히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증평군은 평생을 느리게 살았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원했던 길로 걸어갔던 사람이 있다.
증평군에는 증평의 인물 김득신을 기리는 문학관이 조성이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의 행보는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김득신을 만나기 위해 문학관으로 발걸음을 해보았다.
조선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선 책이 귀했기 때문에 한 권의 책을 여러 번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누군가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책이 여러 사람에게 전달되는 것 자체가 특권에 가까웠다.
이곳에는 태어나서 81세라는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거북이 김득신의 생애를 볼 수가 있다. 김득신은 1604년에 아버지 남봉 김치와 어머니 사천목 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본관은 안동이고 충무공 김시민의 손자라고 한다. 천안을 대표하는 인물이 김시민인데 묘한 인연이다.
백곡 김득신은 조선시대에 독서왕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한 권의 책은 지금과 기준이 달랐다. 훨씬 얇아서 읽기가 더 용이했던 것이 사실이다. 31세부터 67세까지 만 번 이상을 읽은 36편을 기록한 독수기라는 기록을 남겼다고 한다.
책을 읽는 것에 대해 혹은 글을 읽는 것에 대해 권장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생각과 사고를 통해 수많은 실패요인을 줄일 수 있고 변화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를 안다는 것은 과거를 아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를 모르고 어떻게 미래를 알 수 있겠는가. 미래는 언젠가는 현재가 된다.
김득신이 읽은 책을 보면 그 양으로 보면 많지는 않다. 특정 작품을 정말 많이 반복해서 읽었다. 백이전, 노자 전, 주책, 능허대기, 중용서, 목가산기, 제구양문, 귀신장, 제악어문등 수많은 책들을 계속 반복해서 읽었다. 읽을 수 있는 책의 한계도 있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남겨진 김득신의 작품은 1590여 수의 한시와 180편의 산문이 문집 백곡집에 전하고 있다고 한다. 김득신의 시는 고결하고 맑으며, 음률이 새롭고 격식이 기발하였다고 평을 받고 있다.
"나는 내 마음을 속이지 않고, 남을 속이지 않았으며, 말을 함에는 반드시 간략함을 따랐고 반드시 실천하였으며, 빌붙고 아첨하는 일을 하지 않았으며 권세 있는 자와 부유한 자의 문전으로 달려가지 않았으니, 이것이 일생을 지낸 마음의 자취이다."
백곡 김득신의 생각이 엿보이는 글귀다. 필자 역시 그런 삶을 지향하며 살아가고 있다. 조금 더 편하게 더 많이 누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바라는 삶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데 있다.
그의 삶의 변곡점마다 마치 뉴스처럼 만들어두었다.
충청북도 청안현 삼성당(현 증평군 증평읍 내성리 삼성당)에서 태어난 김득신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서 그 후로 뇌 손상을 입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던 사람이다.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 중 가장 지루한 일이기도 하다. 그의 삶을 보면서 책임지는 사람이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돌아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