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공간, 사랑
책 읽기가 가장 좋은 곳은 어디일까.
분위기 좋은 카페나 집 혹은 자신만의 서재? 도서관 등 다양한 공간에서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책을 읽는 공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책을 읽을만한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조차 자신에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의 경우 나름 맛집이라고 불리는 곳에 갈 때면 항상 책을 챙겨간다. 회전율이 높은 집의 경우는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주문하고 나서도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되기 때문인데 그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의미 없는 정보 검색을 하는 것보다는 책 읽는 것이 훨씬 더 유익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도 그렇다.
이날 읽은 책은 레스토랑에 서라는 책으로 책 제목으로만 접했을 때는 전 세계의 유명 레스토랑을 소개해주는 미쉘린 가이드 같은 책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레스토랑을 통해 문화 연구와 역사와 사회를 말하는 서술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한국에도 공공의 음식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주막 정도일까. 그러고 보니 역사 속 공공의 식사 장소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공공의 식사 장소인 레스토랑이 등장한 것은 그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다. 서양 역시 레스토랑의 발전사를 통해 다양한 변화들이 있었다.
"유럽 레스토랑의 역사는 사람들이 배를 곯지 않게 되면서, 또는 배고프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시작되었다. 많은 사람이 제대로 먹지 못하던 1760년 무렵, 파리의 대중음식점에서 배가 부를 정도로 잔뜩 먹는 것은 엘리트의 시대정신과 맞지 않았다."
레스토랑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요리사, 웨이터, 주방 종업원, 미식가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가 등장하는 이 책은 그들의 삶을 투영하기도 하지만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던 다양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 우아하게 식사할 수 있는 것은 공간 구분이 명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겨와 마니아가 좋아할 만한 아이템 들이 가득 차 있는 한 카페의 요리하는 공간 입구에는 영어로 반지의 제왕의 간달프가 말했던 대사 "그대는 이곳을 통과하지 못한다"가 위에 붙여져 있었다. 소비 공간과 준비 공간을 오갈 수 있는 것은 웨이터와 웨이트리스들 뿐이다.
1850년ㄷ 미시시피 강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스펜서, 레스토랑의 고향 파리에서는 타이어 회사 미슐랭이 1900년에 처음으로 식당 정보 안내서인 미슐랭 가이드를 발행한다. 귀족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던 레스토랑은 20세기 초에 엘리트적이고 귀족적인 요소가 밀려나고 중산층이 음식점들을 장악했다고 한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식도락가를 자칭하면서 얕은 경험을 바탕으로 일간지, 지역신문이나 블로그 등에 접사와 후보정 사진을 통해 진정한 맛을 왜곡하고 있다.
진정한 맛집 블로그를 꿈꾼다면 이 책은 그 깊이를 더하는 데 있어서 적지 않은 도움이 될 듯하다. 미슐랭 별점 체계는 오랜 기간에 걸쳐 확립되었다. 그 시작은 <귀족> 음식, <부르주아> 음식, <지역> 음식, <시골> 음식이었다고 한다. 책은 실제 인물과 역사를 적당하게 언급하면서도 맛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때때로 백리향 한 다발만 테이블에 올려놓은 다음, 주방을 돌아다니며 거기서 찾을 수 있는 놀랍도록 신선한 재료들을 모은다.>
"현실에 존재하는 레스토랑은 벨의 지식 사회에 대한 환상과 리처의 맥도널드화 한 세계의 악몽 사이에서 지나치게 멀리 나간 미래상에 맞서 있다. 음식점들은 창의성과 혁신의 새로운 형태들을 탄생시켰다. 물론 음식점은 서비스 노동이 이루어지는 중요한 장소이다. 그러나 여전히 손노동과 준산업적 노동이 행해지는 작업장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레스토랑(한국의 일반 음식점 포함)은 그 나라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고찰의 중요한 대상이 된다는 것에 다시 되돌아보게 되었다. 음식이라는 것은 맛있다와 맛없다로 구분하는 구별의 메커니즘이 있지만 미세한 차이와 큰 차이로 접근할 수 있는 시각의 변화 역시 필요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