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꺼이 사랑에 죽으리
일제 강점기에 조선인과 일본인의 사랑 그리고 일본의 상징적인 인물 천황의 폭살을 기획한 조선의 아나키스트 박열의 이야기는 상반기 핫한 이슈였다. 조선인에게는 흑역사로 기록되어 있는 관동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은 광기에 사로잡힌 히틀러처럼 조선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한다. 문경에 흔적이 남아 있는 박열과 조선땅에서 살아본 경험 때문인지 몰라도 조선인을 사랑했던 가네코에 대한 이야기가 소설처럼 그려진다. 후미코는 박열이 지은 '개새끼'라는 시를 보고 그에게 빠진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가네코는 어릴 때의 불우한 환경과 성적인 학대로 인해 평범하지 않은 삶을 살다 박열을 만났다. 그리고 가네코 후미코는 그와 동거 계약서를 쓴다.
1. 동등한 입장에서 동지로서 동거한다.
2. 아나키스트 활동에서는 가네코 후미코가 여성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3. 한쪽의 사상이 타락하여 권력자와 손잡는 일이 생길 경우 즉시 동거생활을 청산한다.
이 둘은 아나키스트 활동을 계속하면서 천황을 죽이기 위해 폭탄을 구한다. 그리고 이들은 사형 선고를 받기 위해 한 방향의 길로 달려간다.
"1926년 3월 25일 최종심에서 이들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이들에게 사형은 쟁취의 대상에 불과했고 결국 그 뜻을 이룬 것과 같았다. 사형을 선고하자 가네코 후미코는 만세를 불렀고, 박열은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를 자네들 맘대로 죽일 수 있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라는 말을 남긴다."
박열이 니체의 책을 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지은 시나 그의 생각을 보면 니체의 흔적과 닮아 있다. 그가 쓴 강자의 선언에서 보면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언급된 내용과 비슷하다.
니체는 인간은 모순덩어리인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을 견딜 수가 없었고 완전한 존재와 완전한 세계를 바라게 되었기에 신을 원하는 인간의 관념을 비판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자기 자신에게서 찾지 못하는 것은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며 인간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 해도, 그것이 곧 인간의 삶이 의미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삶에 충만한 의미를 새겨 넣어야 한다.'라고 생각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떨쳐버리는 용감한 혼을 가져야 한다.
나는 당연히 용감한 혼을 가졌다.
세상에 어떠한 것을 정말로 무서워해야 할 것인가?
그것을 나는 놈들에게 보여줄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들이 내 목을 단두대에 걸 수는 있을지언정 내 손으로 뿌린 씨앗을 태워 부술 순 없을 것이다."
- 강자의 선언 중
사형 선고를 받고 희망도 없을 것 같은 일본 땅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옥중에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옥중 시를 주고받았다. 이 둘은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곧 은사령을 받아 무기형으로 감형되었다. 이후 1926년 7월 23일 가네코 후미코는 불꽃같았던 삶을 자살로 마무리한다. 이때 나이가 23살이었다.
박열은 가네코 후미코가 자살한 이후 계속 감옥에서 있다가 1945년 10월 27일 아키타 형무소에서 석방된 후 김구와 이승만을 만나게 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3일 뒤 1950년 6월 28일 서울에서 납북된 후 1974년 1월 17일 북한에서 사망하였다.
일본의 천황 폭살을 준비하고 생각했던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서로의 생각이 같았기에 뜨겁게 사랑했다. 낭만적으로 살았다고 말하기에는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 둘이 불꽃같은 삶을 살았고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재판소에서 돌아오는 겨울밤
감옥 마당에 내려서면
초승달이 차갑다
겨울밤 감옥에서 읽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연애소설
죄수복 걸친 벙어리 여죄수
소리 없는 세상에도
고민이 있으랴
사람의 운명은 마음대로 흘러가지는 않지만 적어도 신념대로 살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후회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