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정직하지도 않고 선하지도 않으며 영향력만 있다.
사람의 직업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유흥업에서 올해 일했던 사람(남자, 여자를 가리지 않음) 중에 올바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상당히 드물다. 자신의 젊음과 외모를 가지고 편하게 돈을 벌려는 욕심은 결국 스스로를 변화시키게 만든다.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속이려고 하더라도 다른 감각이 그 사람의 이면에 숨겨진 더러운 이면을 느끼고 무언가 불협화음처럼 가슴에 울림이 있다. TV나 행사장등에서 연예인을 보면 그 사람이 아무리 선한 척을 하더라도 가려지지 않는 것들이 보인다. 왜 그걸 느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사용하는 말과 제스처 그리고 표정과 맞물리지 않는 기괴함이 있다고 할까.
최근에 연예인들의 가십기사가 정말 많다. 앞에서 했던 말과 뒤에서 한 말이 서로 맞지 않는다. 그러니 자꾸 문제가 불거진다. “이래서 양아치 날라리들은 안 되는 것임. 나잇값 좀 하자. 불혹(40세)에 뭐 하는 짓임?”이라고 댓글을 달았다가 한예슬이 당사자를 고소했었다. 1심에서는 30만 원의 벌금을 받았지만 2심에서는 무죄가 선고가 되었다. 자신의 남자친구를 가라오케에서 일했지 호빠에서 일하지 않았다는 이상한 논거를 들고 나온 한예슬은 10살 연하의 남자를 만났다고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제발 연예인들은 떠들썩하게 연인이야기도 하지 말고 마치 세상 행복한 것처럼 자랑을 하지 않는 것이 좋지 않을까. 그렇게 결혼하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이혼하면서 온갖 구설수를 만들고 더러운 그들과의 관계가 모두 까발려진다. 나서지 않으면 나중에 그냥 조용하게 잊힌다. 사람들은 왜 외모만을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할까. 외모는 우선 시작이다. 외모부터 성격과 성정을 모두 봐야 그 사람의 본질을 볼 수가 있다. 언행일치가 안 되는 사람이 인성이 제대로 만들어질 리가 없다.
대중들의 악의적인 괴롭힘을 받지 않으려면 좋은 척을 하던가 선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척을 하지 않아야 한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은 이중적인 모습을 가진 사람이다. 심판을 하려는 대중은 나름의 정의적인 모습으로 물의 연예인의 도덕적 결함을 비난하면서 자신의 도덕적 우월, 정당성을 확인받는 것으로 여기는 심리적 기제가 작동한다. 일반 국민이 시간대비받을 수 있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가 없다. 모두가 노력하면서 살아간다. 연예인만이 노력을 통해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어차피 한국 사회는 다른 국가보다 오징어 게임과 같은 판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과거보다 경제적으로 확실히 여유가 있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실수하거나 낙오된 사람을 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지나가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흡사 거대한 ‘오징어 게임’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다. 연예인의 이중성을 싫어하는 것은 우리보다 도덕적으로 삶을 살아가기에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이들은 더 조심스럽게 살아가야 할 직업에 종사를 한다. 시간당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누가 그렇게 도덕적인 모습을 기대하겠는가. 특히 누군가를 만나서 연애를 하던 결혼을 하든 간에 뉴스화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삶에도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