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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는 누군가 Dec 16. 2017

한재 미나리

청도 화악산 물맛의 정수

모든 것이 물에서 시작하고 물에서 끝이 난다. 물은 생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다. 경북 청도군에 가면 그곳에서만 흐르는 물이 어디서나 쉽게 만나볼 수 없는 맛을 만들어 낸다. 사시사철 그 향기를 맡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매년 봄에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맛은 바로 한재 미나리다. 청도군 청도읍의 화악산 아래 계곡물은 초현리 음지리, 평양리, 상리 일대를 흐르는데 그곳을 한재골이라고 부르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미나리를 한재 미나리라 부른다. 


밀양과 대구 사이에는 경북 최남단에 자리한 청도군이 있다. 고려시대 청도 현으로 개편된 후 지금까지 독립된 행정구역으로 유지되고 있는 청도에는 소싸움이나 감이 유명하다. 여행은 기차역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청도역에서 한재 미나리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해본다. 

청도에는 다른 곳보다 높은 산이 많은 곳이다. 운문산(雲門山, 1,188m)·가지산(加智山, 1,240m)·문복산(文福山, 1,014m)·응강산(832m)·사룡산(四龍山, 685m)·구룡산(九龍山, 675m)· 비슬산(琵瑟山, 1,084m)·수봉산(秀峰山, 593m)·묘 봉산(妙峰山, 513m)·천왕산(天王山, 619m),·억산(億山, 944m)·구만산(九萬山, 785m)·철마산(鐵馬山, 630m)·화악산(華嶽山, 932m)·삼성산(三聖山, 663m)·상원산(上院山, 700m)·선의산(仙義山, 759m) 이 청도를 둘러싸고 있다. 이중 화악산의 계곡물이 흐르는 한재골에 봄이면 사람들이 한재 미나리를 먹으려고 1년에 한 번 찾아와 인산인해를 이룬다. 

한해에 한번 수확하지만 이곳의 농민들은 1년 열두 달 바쁘다. 특히 봄에는 출하를 앞두고 손질 때문에 더 바빠지기는 하지만 그때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재 미나리는 화악산의 시원의 물을 먹고 자라난 무공해 청정 채소로 다른 곳에서 생산된 미나리보다 줄기 끝이 유난히 붉고 아삭아삭한 식감뿐만이 아니라 향도 상당히 좋다. 

130여 농가에서 생산되는 연간 1,000여 톤의 미나리는 전국 생산량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봄에 미나리를 구매하기 위해서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파는 양이 700톤이 넘는다고 하니 다른 지역에서 구매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해 보인다. 

1990년대부터 한재골에서 생산되는 한재 미나리를 알리기 위해 이곳 농부들은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결과 2000년대부터는 한재 미나리는 전국적으로 입맛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이제 알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와서 팔 것이 부족할 정도이다. 특히 지난 3월 19일 다큐멘터리 3일의 방송을 타면서 더 많이 알려졌다고 한다. 

지금은 한재 미나리가 가장 유명하기는 하지만 예전에는 남원 미나리와 왕십리 미나리도 유명했었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미나리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배추김치가 흔히 않았던 시절에 미나리 김치는 우리의 밥상에서 중요한 반찬으로 올라왔었다. 미나리는 상대부들에게는 충성과 정성의 표상이며 학문의 상징이었는데 미나리를 뽑는 것을 인재 뽑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었다. 

직접 청도에서 먹어본 한재 미나리는 충분히 그곳까지 가서 먹을만한 맛과 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쌈채소 등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향기와 풍미가 있어서 식욕을 살리는 데에도 좋고 비타민 B가 풍부해서 에너지를 돋우는데도 좋다. 봄날 물이 오른 미나리 맛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은 맛이다. 

미나리와 잘 어울리는 음식으로 삼겹살을 꼽을 수 있다. 청도에서는 여러 집이 그 지역에서 생산된 국내산 고급 생삼겹살과 미나리를 같이 내놓는다. 향과 맛이 독특하며 입맛을 돋우는 한재 미나리와 고소한 삼겹살은 꽤나 궁합이 좋다. 

삼겹살 집이지만 한재 미나리가 얹어지면서 주인공은 삼겹살이 아닌 게 되어버린다. 삼겹살 굽는 냄새가 진동하더라도 한재 미나리와 싸 먹는 기대감 때문에 삼겹살만 집어 먹는 사람은 드물다. 한재 미나리는 2월 초부터 늦으면 5월 초까지 맛볼 수 있는데 5월을 넘어가면 미나리가 질겨진다. 

미나리를 듬뿍 올려도 맛이 좋고 삼겹살에 둘둘 말아먹어도 좋다. 한재 미나리는 배수가 잘되는 화산암에서 흐르는 물이기에 물갈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렇게 자라난 한재 미나리를 얹고 쌈을 싸 먹으면 겉을 둘러싼 상추가 목안으로 넘어갈 때 씹으면 씹을수록 상큼한 맛이 더해지는 미나리의 맛이 고기의 풍미를 돋운다. 

청도만의 맛 한재 미나리를 먹어보았다면 청도 지역 특산물인 감을 이용해 만들었다는 와인터널을 둘러보는 것도 좋다. 1905년 경부선 철도로 개통되었던 남성현 터널은 1937년에 중지되었으며 2006년까지 특별한 용도 없이 버려졌던 이곳을 청도 감 와인 주식회사에서 감와인 저장 창고뿐만 아니라 복합적 문화 공간으로 정비하여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청도 와인터널의 전체 규모는 길이 1,015m, 폭 4.5m, 높이 5.3m다. 이곳에는 시음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역사 기행 박물관, 빛이 없는 어둠의 공간, 와인 맛 감별 공간이 있고 특히 자신만의 와인을 숙성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여 와인 애호가들 사이에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맛도 즐기고 향도 즐기는 여행의 끝에는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시간도 필요하다. 청도군 운문면 신원리 운문산에 있는 신라시대의 사찰인 운문사는 청도군 화랑정신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운문사는 560년(진흥왕 21) 한 신승(神僧)이 대작 갑사(大鵲岬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원광은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지어 이곳에서 아주 가까운 가슬갑사(嘉瑟岬寺)에서 귀산(貴山) 등에게 주었다고 한다. 937년(태조 20)에 왕이 보양의 공에 대한 보답으로 쌀 50석을 하사하고 ‘운문 선사(雲門禪寺)’라고 사액한 뒤부터 운문사라고 불린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운문사는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 머문 곳으로 유명하기도 한데  1277~1281년에 청도 운문사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하여 1284년 군위 인각사로 들어간 후 1289에 삼국유사 편찬을 끝내고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서 누락한 고조선 등 고대사를 살려낸 삼국유사에는 단군신화를 비롯해 신화와 전설을 포함함으로써 한민족의 뿌리와 주체성을 살려냈으며 백성들의 이야기인 민담 등이 담겨 있다. 

역사는 만들어져 가고 그 과정 속에서 음식문화와 다양한 볼거리가 만들어진다. 청도의 최근의 음식 문화는 한재 미나리와 관련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마당에 심어서 흔하게 볼 수 있고 먹을 수 있던 미나리는 이제 특별한 채소로 자리매김했다. 청도의 청정한 자연이 선물해준 한재 미나리의 향이 지금도 코끝에서 맴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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