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의 고장 괴산군의 청천면과 우암 송시열과 8대손 송병일고택
괴산 하면 가장 먼저 방문하면 좋을 곳으로 화양계곡이 있다. 화양계곡으로 들어가는 입구 전에 조성되어 있는 지역이 청천면이라는 곳이다. 청천면은 버섯으로 특화된 관광시장으로 다양한 농산물과 임산물을 볼 수가 있다. 청천면에는 먹거리로 민물고기를 이용해서 만든 매운탕이나 버섯을 넣어서 만든 음식이 유명하다. 괴산을 좋아했던 유학자로 우암 송시열이 있다. 전국에 적지 않은 흔적을 남긴 송시열이지만 이곳에는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버섯은 한국인들이 참 좋아하는 식재료 중 하나다. 식용도 있지만 독이 들어가 있는 버섯도 있다. 버섯 하면 생각나는 지역이 있지만 괴산의 청천면이 가장 잘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청천버섯축제가 열리는 지역으로 점포마다 송이버섯, 능이버섯, 싸리버섯을 판매하고 있는 곳에 버섯랜드도 조성을 해두었다. 버섯을 콘셉트로 만들어진 이 공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공간도 따로 조성이 되어 있다.
강원지역과 경북지역에서 채취한 송이와 능이버섯도 이곳에서 팔릴 정도로 전국 최대의 자연산 버섯시장이 이곳에서 열린다. 작년에 청천에서는 '환경+버섯'을 주제로 환경의 소중함을 일깨울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 등 주민과 방문객이 어우러진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괴산의 청천이라는 지역을 처음 방문한 것이 10년 정도 되었다. 우암 송시열이 머물렀다는 괴산의 화양계곡을 방문해 보기 위해 지나치다가 다양한 버섯에 홀리듯이 구경을 했던 기억이 난다.
골목골목 이어지는 점포 옆으로는 구룡천이 흘러 자연경관도 좋은데 푸른 내시장은 인근 주민들에게는 생활용품을, 관광객들에게는 최고의 특산물을 공급하고 있는데 4월 ~ 11월까지 매주 토요일에는 토요장터가 문을 열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청천면의 중심상권을 형성하고 있는 청천시장의 토요장터가 운영한다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올해는 4월 5일부터 11월 29일까지 매주 토요일에 운영을 하고 있다. 푸른 내시장에 서서는 쉽게 볼 수 있는 표고버섯부터 시작해서 가격대가 있어서 자주 먹지 못하는 버섯이 즐비한 곳이다. 버섯은 말려 먹으면 그 향이 더 진해지는 묘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푸른 내시장에 서 안쪽으로 들어오면 괴산 송병일 고택이 나온다. 안채와 사랑채는 모두 ‘ㄷ’ 자형으로 동서로 나란히 서있고 중간에 낮은 담장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 송병일고택은 19세기 후반에 지어진 전통가옥이다. 이 고택은 우암 송시열의 후손들이 살던 집으로 송시열의 8대손인 송병일이 충청감사로 재직 시에 아버지를 위해 별당을 지어준 것이 증축을 거쳐 종택으로까지 사용되었다.
대전에도 은진송 씨 집성촌이 있고 우암 송시열을 기리는 공간이 남아있어 매년 많은 방문객들이 찾고 있다. 충청권에서 우암 송시열은 오랜 시간 자신만의 흔적을 남겼다. 이곳과 가까운 곳에 우암 송시열의 신도비를 비롯하여 송시열의 묘가 바로 위에 자리하고 있다.
청천면의 송병일고택의 옆쪽으로 나오면 우암 송시열 비각이 자리하고 있다. 송시열은 효종을 독대(獨對)한 자리에서 북벌 10년 계획을 세우자는 제안을 “마음 수양부터 한 뒤 뭘 해도 하라”며 거부한 인물이다. 당대의 모든 유학자들의 존경을 받고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기에 임금도 그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그렇게 화양계곡과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살았지만 우암 송시열은 조선 후기 서인(西人) 영수이자 노론계 정신적 지주이기도 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했던 우암 송시열은 전북 정읍이라는 곳에서 숙종이 내린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 이곳에 자리한 송시열의 묘는 원래는 경기도 수원에 있었는데 풍수가 사나워 1757년 10월에 이리로 이장했다고 한다.
숙종이 장희빈을 너무 아껴서 낳은 아들을 원자로 책봉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이후 정치적인 피바람이 염려되어 반대했다가 유배되었던 우암 송시열은 이곳에 잠들었다. 역사는 일부의 기록이기도 하다. 괴산의 청천이라는 지역에서 잠시 괴산의 풍경 속에 잠들어 있는 은진송 씨의 이야기를 꺼내어보았다.
대전등에서는 은진송씨의 자산이 적지가 않은데 은진송씨들은 70세 이전까지 회비같은 것을 내다가 70세가 넘으면 생활비의 일부를 보조받게 된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성을 이씨에서 송씨로 바꾸는 것은 어떠냐는 농담도 했었다. 그럼 너의 외할아버지의 성씨는 어떻게하냐는 질문에 우선 어머니는 고아였던것으로 하고 족보를 하나사면 어떻겠냐는 말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