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달재에서 떠나는 순례길에서 도착지 배론성지로 이어지다.
제천이라는 지역은 원주와도 가깝고 영월과도 맞닿아 있다. 제천지역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강원도의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그만큼 깊숙한 곳에 자리한 곳으로 청풍명월의 땅으로 예전에는 접근성이 좋지 않아서 산천에 묻어살기에 좋은 곳이기도 하다. 구불구불한 산길 그리고 물도 깊은 곳, 금수산, 비봉산, 월악산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제천이라는 고장에는 성지도 있다.
배론(舟論)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계곡이 뒤집은 배 형상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깊은 산들이 주변을 감싸고 있어서 포근한 느낌이 있으며 여름에도 냇물과 산세가 운치를 자아내고 있어서 정원과도 같은 느낌이 드는 곳이다.
나라까지 팔아먹는다고 낙인찍힌 천주교인은 이후도 당파싸움에 휘말려 1866년 병인박해까지 4차례의 박해로 무려 만 명 넘게 순교하게 되었다. 제천 10경에 정해져 있는 배론성지는 천주교도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다.
배론성지에는 1855년(철종 6년)에서 1866년(고종 3년)까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론 신학교가 소재했었다. 제천에서 추진하는 숲길 따라 역사 여행지로 개발하고 있는 배론성지에는 광장 3개소, 특화 숲길, 주차장 등 '숲길 따라 걷는 역사 여행'을 테마로 한 복합형 순례길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지역의 대표 문화 자원인 박달재와 배론성지를 연결하는 복합형 순례길로, 역사적 상징성과 자연 치유 요소를 융합한 새로운 관광 콘텐츠로 조성이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배론성지의 6월은 고요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성지들보다 더 깊은 곳이지만 물이 많은 곳이어서 숨어 살기에는 적합했을 듯하다.
배론성지에 자리한 초가집은 1855년 프랑스 선교사가 지은 성 요셉 신학당으로 조선 최초의 신학교이자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으로 라틴어, 신학, 철학, 수사학 등을 가르친 곳인데 세 칸짜리 초가지붕이 특징이다.
건축학적, 미학적 자태를 드러내는 성당과 성전은, 그 자체로 거대한 배(舟)와 같은 모습으로 직접 가보면 알겠지만 내부에서는 배를 연상시키게 하는 디자인으로 만들어진 것을 볼 수가 있다.
내부에 들어오면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들과 관련된 이미지들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황사영 백서 사건부터 성 요셉 신학당과 최양업 신부의 활발한 전교 활동으로 알려진 배론성지는 조선 초기 열악했던 천주교 신도들의 사정과 조선 조정에서 이뤄진 천주교 박해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직은 무덥다고 느껴지는 온도가 아니다. 전체가 공원처럼 조성이 되어 있는 배론성지는 종교와 상관없이 방문해서 천천히 돌아보기에 좋은 곳이다.
배론성지를 한 바퀴 돌아보고 내려오는 길에서 흘러가는 시냇물을 바라보았다. 선선하게 바람이 불고 아래에는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는 가운데 길을 걸으며 순례가 되어볼 수가 있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