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개차반 아이의 부모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왜 아이는 부모를 닮게 되는 것일까.

부모가 인성적으로나 모든 면에서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자식이 개차반인 경우는 사실 찾아보기가 어렵다. 여기서 부모가 훌륭하다는 것은 사회적 지위, 능력 혹은 재산과는 전혀 무관하다. 사회적 지위는 훌륭함의 한 요소가 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사회적 지위가 있다고 해서 훌륭해진다는 것과는 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이혼이나 가정사등으로 인해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 아이를 제외하고 아이가 개차반이 되는 그 이면에는 반드시 쓰레기 같은 부모가 자리하고 있다. 겉으로는 사회적 지위나 재산 등 여러 가지가 괜찮아 보일지는 몰라도 그 내면에는 괴물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으며 그 모습이 그대로 아이에게 반영된 결과다.


분명히 어떤 아이들은 불우한 가정환경이나 부모를 넘어서 자신의 재능을 발굴하고 스스로 우뚝 선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소수이지만 남들이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했기에 때문에 가능했으며 그런 사람은 환경이 만든 고귀함과 다른 내면의 고귀함을 가지게 된다.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돈 좀 있는 가정의 학생이 다니는 명문 한음 국제중학교에서 검건우가 반 친구 4명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남긴 채, 의식불명 상태로 호숫가에서 발견되면서 시작한다. 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한 아이들 부모의 면면을 보면 자신의 이득에만 집중하는 세상에 공감하지 못한 인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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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라는 나라의 교육시스템이 정상이라고 볼 수가 없다. 대다수의 국민들이 다니는 학교시스템을 외면하고 차별화된 학교를 만들면서 마치 국가를 이끌어갈 인재를 기르는 것처럼 포장한다. 문제는 많은 학부모들이 그걸 마치 좋은 교육제도처럼 생각한다는 점이다. 국제중학교나 외고와 같은 학교가 과연 인재를 길러내는가라고 본다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 기득권에 종사할 수 있는 순응하는 시스템에 서열화되어 일하는 사람을 길러낼 뿐이다. 그래놓고 인재라는 탈을 씌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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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이사장, 전직 경찰청장, 국제중학교 관계자는 가장 만만한 변호사의 아들에게 모두 뒤집어쓰우려고 한다. 예전보다 훨씬 위상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변호사라고 하면 나름의 좋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에 변호사 강호창은 아들 강한결을 보호하기 위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 아이의 뒤에는 치사한 부모였다가 피해자가 되고 나서 자신도 역시 약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만약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변호사 강호창은 영원히 약자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중학교를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하면서 자식의 삶을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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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괴물이 되면 그 부모는 악마라는 것을 왜 모를까. 그런 부모가 어떤 곳에 가서 가해자인 자기 자식은 착하다고 말하는데 악마가 자신의 자식이 착하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정상적인지 묻고 싶을 때가 있다. 가해자인 자기 자식이 착하다고 말할 것이 아니라 자기가 왜 그런 자식의 거울이 되었는지 스스로를 자책하고 반성하며 살아가야 한다. 지금도 일어나는 가해자 부모들의 추악한 민낯은 한국의 비뚤어진 교육시스템으로 드러나고 있다. 남들을 짓밟으며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아이를 만들던가 다른 사람과 공존하는 아이를 만드는 것은 모두 부모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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